"너 예일대 다녀?" CNN에 예일까지…'있어빌리티' 파는 한국 패션가
일간스포츠

입력 2022.05.18 07:00 수정 2022.05.17 19:04

서지영 기자

CNN·예일·하버드·코닥·빌보드… 비패션 브랜드 총 집합 한 국내 패션가
고스펙, '있어빌리티' 추구하는 소비자 욕망 잘 읽은 기업의 전략
일부 소비자 "해외에서 연세대 과잠 입고, KBS 티셔츠 입는 꼴"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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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패션과 무관한 해외 유명 브랜드가 국내 업체와 라이선스를 계약해 패션 브랜드로 론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에서 비패션 분야의 라이선스 브랜드 인기가 이렇게 높은 나라는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있어빌리티'(우리말 '있어'에 능력을 뜻하는 영어 'ability'를 섞은 신조어)를 지향하는 소비 욕구와 이미지를 파는 기업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CNN부터 예일까지 
 
CNN 화보컷. CNN어패럴 홈페이지 갈무리

CNN 화보컷. CNN어패럴 홈페이지 갈무리

"이렇게 차려입으면 완전 예일대 학생 느낌 나겠는데…" 

 
지난 1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마련된 패션 브랜드 '예일' 팝업스토어. 이날 매장을 찾은 한 고객은 곳곳에 진열된 티셔츠와 모자, 가방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A 씨는 "꼭 미국 예일대학교 내 기념품 매장에 온 기분이다. 가방까지 메면 왠지 유학파 아이비리그 대학생 같아 보여서 기분이 좋을 것 같다"며 웃었다. 
 
매장에서 만난 또 다른 고객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국내 유명사립대학교 출신이라는 B 씨는 "베이직하고 예쁘긴 한데 사 입긴 조금 민망할 거 같기도 하다. 서울대나 연세대 학과 점퍼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예쁘다고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좀 묘하지 않을까"라고 털어놨다.   
 
예일은 최근 국내에서 잘 나가는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로 통한다. 국내 업체인 워즈코퍼레이션이 라이선스 계약으로 선보인 예일은 론칭 1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며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패션 플랫폼 1위인 무신사에 입점되면서 승승장구 중이다. 워즈코퍼레이션은 여세를 몰아 예일의 오프라인 매장 출점 및 골프웨어 진출까지 노리고 있다.  
 
비단 예일만이 아니다.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한국에서만 판매되는 패션 브랜드가 차고 넘친다. 다큐멘터리 채널인 '디스커버리'와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이미 대중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밖에도 미국 뉴스 채널인 'CNN', 미국 음악 잡지 겸 판매 랭킹인 '빌보드', 필름 브랜드 '코닥', 유명 사립대학교인 'UCLA'와 '하버드'까지 그 폭과 종류가 다양하다. 어디선가 들어봄 직한 타이틀은 모조리 옷에 가져다 붙이려는 기세다. 
 
 
유독 한국만 있는 현상 
라이선스 브랜드 '빌보드' 화보컷. 바바패션그룹 제공

라이선스 브랜드 '빌보드' 화보컷. 바바패션그룹 제공

 
세계에서 패션과 무관한 상표를 의류에 부착해 판매하는 사례는 사실상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 공통된 평가다.  
 
패션기업 C 사 관계자는 "전 세계를 통틀어 이런 부류의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가 이렇게 많고 두각을 보이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다큐멘터리 채널인 내셔널지오그래픽과 디스커버리, 뉴스 채널 CNN, 빌보드 등은 그동안 패션 사업을 전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며 "모두 국내 기업이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패션에 진출한 케이스로 안다"고 했다.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글로벌 패션 의류를 전개하는 D 사 관계자는 "국내 첫 비패션 브랜드를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로 들여온 F&F의 디스커버리익스페디션, 후발 주자인 더네이쳐홀딩스의 내셔널지오그래픽어패럴은 나름대로 없던 분야를 개척하고 포지션을 잘 잡았다"며 "아웃도어와 일상복의 중간 지대를 공략하면서 빠른 성장을 이뤘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어패럴은 국내 사업이 잘되자 본사로부터 중국과 인도 등지의 판권까지 사들여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디스커버리익스페디션은 이른바 국내 라이프스타일 웨어 부문 선두다. 
 
그러나 D 사 관계자는 "어디 하나가 잘되면 우르르 몰려든다. 한때 NASA가 패션 브랜드로 론칭되더니 CNN, 빌보드, 코닥까지 셀 수 없이 많다"며 "소위 말하는 근본 없는 브랜드가 끝없이 늘어나면 소비자도 피로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더 나은 소재나 디자인을 고민하기보다는,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분위기 역시 장기적으로 좋을 것이 없다.    
 
 
'있어 보이는 욕망'을 판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CNN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예일 등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있어빌리티' 있는 고스펙을 품고 있다"며 "패션기업이 소비자의 '있어 보이고 싶은 욕망'을 파고들고, 이미지를 패션에 투영시켜 판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선망하는 아이비리그 대학교인 예일이나 하버드의 학구적 분위기, 그럴듯한 탐험가처럼 보이는 다큐멘터리 채널 관계자처럼 보이길 원하는 욕구를 옷으로 실현한다는 것이다. 
 
팬덤 소비에 유달리 열정적인 한국의 특유의 문화도 이런 비패션 라이선스 브랜드의 열기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정 문화평론가는 "아이돌이든 방송 프로그램이든 이를 좋아하는 팬덤이 있는 곳에 상품, 즉 굿즈가 만들어진다. 로고가 곧 브랜드 이미지이고 그 이미지가 있는 상품은 다양하게 사들이는 것"이라며 "한국은 이런 팬덤 상품 소비가 최첨단을 달리는 나라다. 팬덤 상품을 소비로 바로 연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 과잠이나 KBS 점퍼가 다른 나라에서 의류로 팔린다고 생각하면 조금 민망할 수는 있다"며 "원래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만, 멀리 있으면 안 보인다. 그냥 이미지를 소비할 뿐"이라고 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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