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국가(國歌)가 여러 개인 잉글랜드 대표팀
일간스포츠

입력 2022.05.18 06:00 수정 2022.05.17 09:50

김영서 기자
영국(UK)은 4개의 지역,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북아일랜드로 구성된다. 이 네 지역을 홈 네이션스(Home Nations)라고 부르기도 한다. 홈 네이션스는 단일 팀인 ‘Team GB’로 올림픽에 참가한다. 하지만 4년마다 개최되는 영국 연방 국가 간의 종합 스포츠 대회인 코먼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에는 이 네 지역이 각각의 대표팀을 꾸려 참가한다.
 
홈 네이션스는 그들만의 축구 대표팀과 국가(國歌)도 가지고 있다. 영국 국가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God Save the Queen(GSQ, 신이여 여왕을 지켜 주소서)’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 2월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고령인 여왕(1926년생)이 왕위를 찰스 왕세자나 윌리엄 왕세손에게 물려줄 경우 국가는 ‘God Save the King’으로 바뀐다.
 
대영제국의 확장을 통해 ‘God Save the King/Queen’은 전 세계로 수출되었고, 각 식민지의 국가 역할을 했다. 식민지들의 독립과 함께 이 곡의 사용 빈도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GSQ는 아직도 뉴질랜드의 공식 국가 2개 중 하나이고, 캐나다와 호주 등을 포함한 14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의 왕실가로 사용되고 있다.
 
GSQ는 ‘사실상의(de facto)’ 영국 국가이지만, 법적으로 공인된 건 아니다. 영국에는 비공식 국가가 하나 더 있다. ‘Rule, Britannia!(지배하라 브리타니아!)’가 바로 그것이다. 브리타니아는 고대 로마인이 사용했던 브리튼(Britain) 섬의 호칭이자, 이 섬을 상징하는 여성 전사이기도 하다.
 
Rule Britannia는 18세기 중반에 등장해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사실 일반인이 부르기 힘든 곡이다. 이에 성악가의 독창을 위시로 관중들은 유명한 후렴구 "Rule Britannia, Britannia rule the waves. Britons never, never, never shall be slaves. 지배하라 브리타니아. 파도를 지배하라. 영국인은 절대, 절대, 절대 노예가 될 수 없다"를 합창하는 식으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파도를 지배하라”는 후렴구에서 보이듯이 특히 이 곡은 해상을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해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노래는 군국주의적인 가사 때문에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으나, 일반 영국인들에게는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스널 FC는 1971년 FA컵 결승전에 진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Rule Britannia의 멜로디에 새 가사를 붙여 ‘Good Old Arsenal’를 만들었다. 아스널은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2-1로 물리치며 우승했고, 이 응원가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도 공식 국가가 없다. 따라서 그들은 국제 스포츠경기가 열릴 때 영국 국가인 GSQ를 주로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축구와 럭비 유니언에 GSQ가 연주된다. 흥미로운 점은 잉글랜드는 종목에 따라 다른 국가를 쓸 때도 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사진과 설명: 지난해 11월 알바니아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국가를 부르는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잉글랜드는 'God Save the Queen'을 국가로 쓴다. [AP=연합뉴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사진과 설명: 지난해 11월 알바니아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국가를 부르는 잉글랜드 축구대표팀. 잉글랜드는 'God Save the Queen'을 국가로 쓴다. [AP=연합뉴스]

에드워드 엘가가 작곡한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의 ‘Land of Hope and Glory(LHG, 희망과 영광의 나라)’도 잉글랜드의 국가로 널리 쓰인다.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이 곡은 2005년까지 잉글랜드 럭비 리그 대표팀과 다트 팀의 국가로 쓰였다. 정치적으로는 영국의 보수당과 연관이 깊고, 가사에 제국주의적 요소가 담겨 있어 좌파 지식인들의 비판을 받는 노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LHG는 졸업식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때도 이 곡은 여러 번 연주됐다.
 
잉글랜드 크리켓 대표팀이 사용하는 국가는 ‘Jerusalem(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이 잉글랜드 국가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진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1804년 ‘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고대에 그 발을 행하였나이다)’로 시작하는 시를 작성했다. 어린 예수가 아리마데의 요셉과 옛 잉글랜드 땅을 방문했다는 전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시는 예수의 방문이 잉글랜드에 천국을 만들었는지를 묻고 있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영국 성공회(Church of England)는 예루살렘을 천국에 비유해 왔다. 1916년 휴버트 페리 경이 이 시에 곡을 붙여 찬송가 ‘예루살렘’이 만들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의 할아버지였던 조지 5세는 God Save the King을 대신해 예루살렘을 영국 국가로 선호했다고 한다. 이 곡은 다른 나라에 대한 우월성 선언이나 정복 등의 내용이 없고, 영국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지지자들과 진보 인사들 사이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다. 
 
2006 코먼웰스 게임까지 잉글랜드의 국가는 LHG였다. 하지만 2010 대회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예루살렘은 52%의 지지를 받아 새 국가로 선정됐다. 당시 LHG는 32%의 지지를 얻었고, GSQ는 겨우 12%를 얻는 데 그쳤다.  
 
GSQ는 잉글랜드를 비롯해 영국에서도 인기를 잃어 가고 있다. 이 곡은 국가가 지향할 바를 보여주기보다 군주에 대한 충성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비민주적이고,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곡 자체도 지루하고 영감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다른 홈 네이션스처럼 잉글랜드도 독자적인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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