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수 타일러 애플러(29·키움 히어로즈)가 자신을 향한 우려의 시선을 거둬냈다. 키움의 상승세를 이끌며 올 시즌 KBO리그 최고의 '가성비 외국인'으로 떠올랐다.
애플러의 정규시즌 성적은 29일 기준으로 4승 2패 평균자책점 2.72이다. 피안타율이 0.239로 낮고 이닝당 출루허용(WHIP)도 1.07로 수준급이다. WHIP는 리그를 대표하는 '외국인 에이스' 데이비드 뷰캐넌(삼성 라이온즈·1.15) 케이시 켈리(LG 트윈스·1.16)보다 낮다. 그만큼 출루를 억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최근 3경기 평균자책점은 불과 0.82(22이닝 2자책점)다.
지난해 12월 키움과 계약이 발표됐을 때만 하더라도 애플러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워싱턴 내셔널스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2승 9패 평균자책점 7.75에 그쳤다. 9이닝당 피안타가 11.8개일 정도로 난타당했다. 낙제 수준의 성적표 때문에 KBO리그 구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키움은 아니었다. 시즌 중 국제스카우트팀을 파견, 선수를 체크했고 다각도로 분석한 끝에 "반등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플러는 2018년 피츠버그 파이리츠 산하 트리플A에서 13승을 따냈다. 이듬해 일본 프로야구(NPB)에 진출,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평균자책점 4.02(31과 3분의 1이닝)를 기록한 이력이 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워싱턴에서 뛸 때 투수 코치가 팔의 타점(릴리스 포인트)을 내리라고 했고 그 이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스카우트팀이 직접 보고) 체크했을 때 팔의 타점이 올라가 있었다. (변화를 준 덕분에) 직구에 힘도 있었고, 변화구가 꺾이는 것도 날카로웠다"고 했다.
애플러는 키움 유니폼을 입고 '장점'만 보여주고 있다. 1m96㎝의 큰 키를 활용해 높은 릴리스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여기에서 나오는 직구(포심 패스트볼)는 물론 커브·슬라이더·체인지업·투심 패스트볼(투심) 등 다양한 구종이 위력적이다. 송신영 키움 투수 코치는 "(미국에서와 달리 투구 레퍼토리에) 투심과 포심을 섞고 있다. 변화구도 효과적으로 던지기 위해 노력 중인데 그 부분이 타자와의 승부에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이 말하는 애플러의 최대 강점은 제구다. 올 시즌 9이닝당 볼넷이 1.51개로 적다. 지난 2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선 9이닝 3피안타 무사사구 완봉승을 따내기도 했다. 히어로즈 투수가 '무사사구 완봉승'을 달성한 건 역대 다섯 번째.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칼날 제구'로 롯데 타자들의 배트를 무력화했다. 키움에서 4년째 활약 중인 에이스 에릭 요키시(6승 3패 평균자책점 2.67)와 '판박이'다.
올 시즌 키움에 대한 전망은 어두웠다. 팀의 상징 박병호(현 KT 위즈)가 이적했고, 뚜렷한 전력 보강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치열하게 2~3위 경쟁 중이다. 요키시·안우진과 함께 선발 로테이션을 이끄는 '가성비 갑' 애플러의 깜짝 활약이 팀 상승세에 한몫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