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잉글랜드, 너만은 이기고 싶다
일간스포츠

입력 2022.06.08 06:00 수정 2022.06.07 10:40

김식 기자
1707년 연합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의회를 하나로 묶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탄생시켰다. 법적으로 한 나라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스코틀랜드의 저항 정신이 쉽게 사라질 리 만무했다.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잉글랜드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이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폐위시킨 혁명) 이후 영국에는 스코틀랜드의 왕실이었던 스튜어트 왕조의 복위를 주장한 자코바이트의 난(Jacobite rising)이 여러 차례 일어난다.
 
1745년 찰스 왕세자는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에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켜, 에든버러를 점령한 데 이어 잉글랜드의 더비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프랑스의 지원을 받지 못해 결국 퇴각했고, 이듬해 벌어진 컬로든 전투에서 패하며 자코바이트의 난은 막을 내린다.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아웃랜더(Outlander)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잉글랜드는 반란의 씨를 없애고자 스코틀랜드 지역 사회에 잔혹한 탄압을 가했다. 많은 이들이 반역죄로 처형됐고,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백 파이프와 격자무늬도 금지됐다. 이들의 클랜(clan, 씨족) 제도도 잦은 반란의 근거로 여겨져, 1750~1860년에 걸쳐 고원지대의 인구를 대폭 줄이는 하이랜드 클리어런스(Highland Clearances) 정책이 시행되었다. 클랜의 붕괴로 많은 구성원은 고향에서 쫓겨났다. 이들은 도시의 하층민으로 살 거나 신대륙으로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두 나라는 피를 덜 흘리는 방법으로 싸우는 법을 찾아냈다. 축구를 통한 대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 나라는 1872년 축구 역사상 최초의 국제 경기를 벌였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치열하게 부딪힌 끝에 경기는 0-0으로 끝났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첫 대결을 알리는 신문 광고. [위키미디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첫 대결을 알리는 신문 광고. [위키미디어]

 
이듬해인 1873년 런던에서 다시 한번 두 나라의 경기가 벌어져, 잉글랜드가 4-2로 승리한다. 이후 두 나라의 경기는 매년 열렸다. 악감정이 남아있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만은 꼭 이기고 싶어 했다. 언론은 이들을 ‘오래된 적(Auld Enemy, auld는 스코틀랜드 영어로 old를 의미)’으로 불렀다. 
 
인구와 경제력에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보다 훨씬 작은 나라다. 하지만 뛰어난 축구 기술로 무장한 이들은 라이벌에 당당히 맞섰다. 그 결과 스코틀랜드는 1880년부터 5연승을 거두는 등 초반 16경기에서 10승 4무 2패를 거두며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스코틀랜드가 29승을 거둔 데 비해, 잉글랜드는 19승에 그쳤다.
 
2차 대전 이후 판세는 바뀐다. 특히 잉글랜드는 1966 월드컵 우승에 이어 기세를 모아 19경기 무패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기세등등했던 잉글랜드가 1967년 자신들의 성지 웸블리에서 스코틀랜드와 다시 만났을 때, 결과는 뻔해 보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가 3-2로 깜짝 승리를 거둔다. 승리에 고무된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신들이 ‘비공식 세계챔피언’이 됐다고 농담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벌어진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꾸준히 우위를 보였고, 결국 연례 경기는 1989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잉글랜드 입장에서 스코틀랜드는 경쟁 상대가 더는 아니었고, 새로운 라이벌로 부각한 아르헨티나·독일과의 경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는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 96에서 다시 맞붙는다. 7년 만의 대결에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1996년 6월 15일 웸블리에서 열린 경기 전 스코틀랜드의 국가 ‘Flower of Scotland’가 연주되자, 잉글랜드 팬들은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후반전 앨런 시어러의 골로 잉글랜드가 앞섰고, 키퍼 데이비드 시먼은 페널티 킥을 막아냈다. 이어 당시 스코틀랜드 클럽 레인저스 소속이었던 폴 게시코인이 그림 같은 슛을 성공하며 잉글랜드가 2-0으로 승리한다.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4-0으로 앞서다, 78분 패트릭 클루이베르트에게 골을 허용한다. 4-1로 끝난 이 경기에 잉글랜드 팬들은 특히 열광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네덜란드에 막혀 1994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 했던 잉글랜드는 2년 만에 대승으로 빚을 갚아준 것이다. 둘째 네덜란드의 이 한 골로 인해 결국 스코틀랜드가 8강 진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2020 유로에서 스코틀랜드를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AP=연합뉴스]

2020 유로에서 스코틀랜드를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 [AP=연합뉴스]

 
그 후 이들은 월드컵 예선과 유로 등에서 몇 차례 더 맞붙었다. 두 나라는 지금까지 총 115번의 공식 대결을 가졌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들보다 많이 만나지 않았다. 역대 전적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각각 48승과 41승을 거뒀고, 26번 비겼다. 아울러 1937년 경기에는 14만 9415명의 관중이 모여 유럽 축구장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다.  
 
지난 1일 스코틀랜드는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통산 8번 월드컵에 진출한 스코틀랜드는 본선에서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한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것도 무려 24년 전이다. 그만큼 스코틀랜드도 2022 월드컵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가 연주 때 스코틀랜드 팬들은 그들의 국가를 따라 불렀다. 팬들은 경기 후에도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와 격려를 보내줬다. 거대한 이웃 나라와 싸우고 있는 현재의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며, 스코틀랜드인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던 자신들의 옛 모습을 본 것이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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