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행' 택한 김라경 "여자야구, 취미 넘어 직업 되길"
일간스포츠

입력 2022.06.13 07:10 수정 2022.06.12 17:25

차승윤 기자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 김라경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 김라경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김라경(22)은 한국 여자야구에서 '최초'라는 이정표를 여러 개 세운 인물이다. 오빠 김병근(전 한화 이글스 투수)의 영향으로 야구에 빠졌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리틀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공식 경기에서 홈런을 쳤고, 이는 리틀야구 여자 선수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2015년 LG배 국제여자야구대회(당시 중학교 3학년)에서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최연소 기록을 세웠고, 현재까지 대표팀 간판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여자야구 에이스'가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나마 '김라경 특별법(리틀야구 나이 제한을 여자 선수에 한해 중학교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연장)'이 만들어진 덕분에 조금 더 뛸 수 있었다. 김라경은 "당시 리틀야구연맹에서 큰 결정을 내려줬다"면서도 "여자 선수에게는 리틀야구 이후에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설이 전무하다. 국가대표에 합류하거나 사회인 리그를 뛰는 것밖에 길이 없다. 국가대표도 주말에 이틀 합숙하는 게 할 수 있는 훈련의 전부였다"고 했다.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 김라경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 김라경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막다른 길에서 김라경은 스스로 진로를 만들었다. 계룡중-진접고를 졸업한 김라경은 지난 2020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남자 야구부에 합류, 남자 엘리트 선수들과 상대했다. 김라경은 "서울대에서 뛰어보니 내 체력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최대한 힘을 내도 3이닝 정도만 가능했다. 타자들이 내 공을 적극적으로 쳐내더라. 그래서 힘이 아닌 변화구와 제구에 신경써야 했다"며 "용기도 얻었다. 3이닝 때 대량 실점을 한 적이 있지만, 2이닝까지는 무실점으로 막기도 했다. 힘으로든 기술로든 '남자 선수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는데 희망이 생겼다"고 떠올렸다.
 
김라경은 다시 새 길을 열었다. 오는 18일 출국해 일본 실업리그 아사히 트러스트에 입단하는 것이다. 일본은 소프트볼, 연식 야구를 시작으로 100년 넘게 발전해온 여자야구 선진국으로 꼽힌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이 있고, 전국에 수십 개의 팀이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최근까지 프로 리그도 운영됐다. 프로리그가 사라진 현재에는 한신 타이거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 프로 구단들이 레이디스 팀을 창단해 여자야구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김라경은 "고등학교 1학년(2016년) 때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세계 여자야구를 처음 경험했다. 일본, 호주, 캐나다 등 여자야구 강국을 많이 상대했다. 여러 강팀 중에서도 우승팀 일본이 남달랐다. 야구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했고, 팀워크도 좋았다. 팀플레이와 내야 수비도 정말 탄탄했다. 그때 '내가 우물 안 개구리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선진야구를 배우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 김라경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한국 여자야구의 에이스 김라경이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한국 최초에 도전하는 김라경은 후배들이 그의 길을 따라오길 바란다. 선수로 뛰는 것뿐 아니라 직접 팀 JDB(Just Do Baseball)를 만든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JDB는 외인 구단 형태로 2주에 한 번씩 모여 경기를 치른다.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꾸준히 자신들을 알리고 있다. 김라경은 “나와 같은 꿈, 고민이 있는 후배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국가대표 유망주 육성 팀을 만들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래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일본 여자야구 진출을 함께 꿈꾸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여자야구는 대부분의 국·내외 대회에서 정식 종목이 아니다. 그래서 어려움도 많다. 김라경은 "JDB를 체계적인 팀으로 만들기 위해 전국 지자체, 협회, 기업에 제안서를 여러 번 제출하고 대화를 나눴다. 그때마다 여자야구는 전국체전이나 올림픽 종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저 취미에 그치니까 목표가 없어진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이 계속하기도, 학부모가 지원하기도 어렵다"고 안타까워했다.
 
김라경은 "JDB 마스코트와 티셔츠를 제작해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총 900만원이 모였다. 여자야구 꿈나무들을 위한 장을 만들고자 했다"며 "다만 여전히 적은 액수다. 팀 운영이나 대회 개최를 하려면 힘이 더 필요하다. 여자야구연맹, 리틀야구연맹이나 기업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라경의 꿈은 일본처럼 한국 여자야구가 '취미'가 아닌 '직업'이 되는 것이다. 김라경은 "임금이 적더라도 여자야구 선수가 직업이 되는 리그가 생겼으면 좋겠다. 일본 여자야구는 아기자기한 플레이가 매력이다. 지역사회와 연계도 잘 되어 있어 매력이 많은 리그다. 가서 배우고 느껴보고 싶다"며 "호주 여자야구는 펜스를 90m 정도로 앞당기는 등 신체적인 차이에 따라 리그 환경을 조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니 홈런도 나오고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볼 수 있다"고 여자야구의 가능성을 전했다. 그는 "일본에 다녀온 후에는 스포츠 행정가가 되고 싶다. 소외되는 선수나 종목이 없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차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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