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IS]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BTS 단체활동 잠정 중단으로 본 K팝의 그림자
일간스포츠

입력 2022.06.15 12:57 수정 2022.06.15 13:02

정진영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엔터계에서 새로운 스타가 떠올랐을 때 업계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다. 대개 너무 바빠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고 호소하는 스타들에게 다른 이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그룹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방탄소년단으로 더 오래 활동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을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리더 RM은 14일 오후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 방탄티비에서 공개된 영상에서 “K팝도 그렇고 아이돌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도록 놔두지 않는 것 같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그러면 인간적으로 성숙할 시간이 없다”고 털어놨다.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사진=빅히트 뮤직 제공

방탄소년단은 데뷔 이래 줄곧 자신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메시지를 세상에 던지며 대중과 소통했던 그룹. RM은 “세상에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온’ 활동 이후 어떻게 할지 몰랐다”면서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 ‘퍼미션 투 댄스’를 하며 우리가 어떤 팀인지 모르겠더라. 내가 항상 가사를 쓰는 것도 그렇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느냐가 중요하고 살아가는 의미인데 그런 게 없어진 거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방탄소년단은 물론 다른 많은 팝스타들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예정됐던 공연이나 앨범 발매가 연기되거나 취소됐고, 관객들과 만나지 못해 자신의 존재 의미에 회의가 든다고 토로했던 스타들도 여럿이었다. 그 와중 방탄소년단은 세 장의 영어 싱글을 발매했다. ‘다이너마이트’부터 ‘버터’, ‘퍼미션 투 댄스’가 그것.
 
이 노래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에 힘입어 ‘그래미 어워드’까지 노미네이트됐다. 비록 수상은 불발됐으나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K팝이 가보지 못 했던, 역사적인 길이었다. 하지만 분명 영어로 된 싱글을 연달아 내는 것이나 정규가 아닌 싱글만 내는 것, 이들이 가지고 있던 어떠한 굵직한 메시지나 스토리라인이 다소 결여됐었다는 점에서 이전까지의 활동들과 비교된다. 멤버들은 영상에서 “솔직히 답답하고 억울한 것도 많았다”고 호소하고 “어떠한 걸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를 안 해야 하는데”라며 후회의 심경을 드러내면서도 “뭔가 함부로 말하기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많았다”고 위안했다.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섰던 방탄소년단.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LAS VEGAS, NEVADA - APRIL 03: BTS perform onstage during the 64th Annual GRAMMY Awards at MGM Grand Garden Arena on April 03, 2022 in Las Vegas, Nevada. (Photo by Matt Winkelmeyer/Getty Images)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 섰던 방탄소년단. 사진=게티이미지 제공 LAS VEGAS, NEVADA - APRIL 03: BTS perform onstage during the 64th Annual GRAMMY Awards at MGM Grand Garden Arena on April 03, 2022 in Las Vegas, Nevada. (Photo by Matt Winkelmeyer/Getty Images)

사실 개인이 견디기엔 너무 큰 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K팝을 넘어 한국 문화, 전 세계 아시아인들을 대변하는 위치에까지 올라간 방탄소년단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내뱉던 말들이 부드럽게 다듬어졌고, 폐부를 찌르기보다는 모두를 두루 포용할 수 있는 넓은 품을 보여주는 데 더 힘써야 했다. 그 사이 소속사는 상장 기업이 됐고, 주주들은 하이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큰 세력이 됐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느꼈을 그 답답함이 어렴풋이 짐작되는 바다.
 
“그때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국민적인, 혹은 세계적인 인기를 끈 최정상기를 지나온 스타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매니저가 깨우면 졸면서 샵에 가기 바쁘고, 메이크업과 헤어가 끝나면 다시 졸면서 방송 녹화장으로 향한다. 행사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서울-부산급 거리를 오가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한다. 떠밀리듯 앨범을 내고 무대에 올라가면 차트 결과가 기다리고 있고, 팬들은 환호를 보낸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펼쳐나가고 싶은지를 진득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그럼에도 스태프나 동료들은 등을 떠민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엔터계는 잔혹한 곳이다. 모두에게 각광받는 스타가 되거나 모두가 외면하거나. 그 중간 어디쯤 자리를 잡고 유영하기에 엔터계를 흐르는 물살은 너무나 거세고, 또 빠르다. 특히나 수년간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스타를 데뷔시키는 현재의 한국 엔터 시스템은 사람을 더 조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 또 데뷔 프로모션 기간 동안 쏟아부은 자금을 빠르게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자금이 회수돼야 스타들에게도 비로소 정산이라는 게 가능해진다.
 
어쩌면 이런 지독한 시스템은 스타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스태프들마저 정신없게 만드는지 모른다. 새벽에 자신의 스타를 깨우러 가야 하는 매니저, 아티스트 의견만큼 주주들을 달래는 게 중요해진 회사, 내 스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듣지도 않는 노래를 끊임없이 재생해 차트 상위권에 올려야 하는 팬들. 한 발이라도 미끄러지면 큰일이 날 것처럼 모두 정신없이 노를 젓고 있는 모양새지만, 실상 그렇게 노를 저어 다다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한국 콘텐츠와 아티스트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2022년. 이미 수많은 빛나는 성과를 거둔 한국 연예계에 지금 필요한 것은 진지한 고민의 시간 아닐까. 왜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에서 사랑받는지, 우리가 가진 색과 장점, 혹은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일지,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방탄소년단의 그룹 활동 잠정 중단 선언이 연예계에 던진 묵직한 화두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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