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타격 천재'다. 이정후는 지난 4월 KBO리그 최연소(23세7개월28일)이자 최소 경기(670경기) 900안타 기록을 달성했다. 통산 3000타석 소화 기준 타율 1위(0.339)도 그의 몫이다. 타격이 워낙 뛰어난 만큼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능력도 적지 않다. 수비도 그중 하나다. 김지수 키움 수비 코치는 "타격을 잘해 조명을 덜 받지만, 이정후의 수비는 리그 톱"이라고 했다.
휘문고 시절 이정후의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2017년 1차 지명으로 넥센(현 키움)에 입단할 때에도 아버지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현 LG 트윈스 2군 감독)의 대를 이을 유격수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입단 직후 송구의 정확성이 떨어져 포지션을 외야수로 전환했다. 주로 우익수를 맡았던 이정후는 2020년부터 중견수로 뛰고 있다. 수비 부담은 커진 가운데, 2018년부터 4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놓치지 않고 있다.
고형욱 키움 단장은 "외야수는 (수비할 때) 첫발 스타트가 굉장히 중요하다. 도루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첫발 스타트가 빠르면 다리가 쭉쭉 나간다. 이정후는 첫발 스타트와 타구 판단이 모두 빠르다. 어떻게 보면 동물적인 능력을 타고났다"며 "타구 판단이 좋으면 수비 범위가 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후의 수비 능력이 진가를 발휘한 건 지난 14일 두산 베어스전이었다. 이정후는 2-0으로 앞선 6회 초 1사 1·3루에서 홈 보살로 이닝을 끝냈다. 양석환의 중견수 플라이 때 홈으로 쇄도하던 3루 주자 허경민을 잡아낸 것이다. 힘껏 던진 송구가 원바운드 후 정확하게 포수 미트로 향했다. 9회 초에는 강승호의 짧은 외야 플라이를 슬라이딩 캐치로 처리, 두산의 추격 의지를 꺾었다. 홍원기 키움 감독은 "우리가 계속 (좋은) 흐름을 탈 수 있는 건 수비의 영향"이라고 했다.
중견수는 외야 세 포지션 중 가장 까다롭다. 수비 범위가 넓고, 코너 외야수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김지수 코치는 "이정후는 수비 범위가 넓다. 주자 2루에서 중견수 쪽 땅볼 안타는 전진 수비를 하지 않는 이상 홈에서 아웃시키기 어려운데 이정후는 승부가 가능할 정도로 어깨가 강하다"고 했다. 이어 "코너 외야수와 잘 호흡하는 것도 중견수의 중요한 역할인데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와 소통도 잘한다. 이정후가 프로에 와서 외야수를 한 만큼 적응 기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완성 단계에 가까이 가지 않나 싶다"고 칭찬했다.
이정후는 오히려 "중견수가 편하다"고 했다. 그는 "측면(코너) 외야수는 파울 지역으로 휘어져 가는 타구가 있어 어렵다. 반면 중견수는 타자를 넓게 바라볼 수 있어 측면 외야수보다 수비하기 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고 했다. 김지수 코치는 "중견수는 양쪽으로 오는 타구를 잘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더 어려울 수 있는데 이정후가 센터(중견수)에 있으면 안정적"이라고 했다.
이정후는 해외리그 진출을 노린다. 올해로 프로 6년 차. 국제대회 출전으로 인한 등록일수 보상을 더하면 이번 시즌 뒤 '1군 등록일수 7년'을 채운다. 내년 시즌이 끝나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해외진출이 가능한 만큼 미국 메이저리그(MLB) 구단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고형욱 단장은 "운동 신경이 좋은 선수들은 어느 포지션도 잘 소화한다"고 했다. 공격은 물론 수비까지 잘하는 이정후의 가치가 연일 상한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