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여우’ 임희정(22)이 2022시즌 첫 승을 메이저 트로피로 장식했다. 내셔널 타이틀 대회 최저타 신기록을 쓰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임희정은 19일 충북 음성군 레인보우힐스CC(파72·6699야드)에서 열린 DB그룹 제36회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총상금 12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를 기록한 임희정은 2위 권서연을 6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지난해 8월 하이원리조트 여자오픈 이후 301일 만의 우승이자 통산 5승째였다.
임희정이 기록한 19언더파 269타는 한국여자오픈 사상 최저타인 동시에 최다 언더파 신기록이다. 종전 기록은 2021년 박민지, 2018년 오지현이 기록한 17언더파 271타였다. 임희정은 이미 전날 3라운드까지 16언더파 200타를 기록, 이 대회 54홀 최저타 기록도 새로 쓴 바 있다.
한국여자오픈은 그동안 청라 베어즈베스트에서 열리다가 지난해 레인보우힐스로 대회 장소를 바꿨다. 이곳은 산악지형을 그대로 살린 굴곡진 코스 탓에 페어웨이를 한번 벗어나면 좀체 파세이브 하기 어렵다. 그린 언듈레이션도 심한 코스로 악명이 높다.
기온 차가 큰 사막에서도 잘 사는 사막여우처럼 임희정은 난코스에서 단연 돋보였다. 사막여우처럼 웃는다고 해서 이 별명이 생긴 것인데, 임희정은 사막여우 같은 적응력을 보였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는 박민지와 박현경이 마지막 날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인 끝에 박민지가 17언더파로 우승했다. 당시 임희정은 박민지를 보며 “어떻게 이런 코스에서 그 성적을 내는지 경이로웠다”고 했다. 하지만 1년 후 보란 듯이 박민지의 기록을 다시 썼다.
임희정은 최종 라운드에서 디펜딩 챔피언 박민지와 동반 라운드를 했다. 박민지가 6타 뒤진 2위로 출발했는데, 임희정이 긴장을 놓을 수 없도록 물고 늘어졌다.
임희정은 1, 2번 홀 연속 버디를 잡은 후 3~6번 홀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한 채 다소 주춤했다. 그사이 박민지가 5번 홀에서 버디를 잡으며 추격했다. 7번 홀(파5)에서 박민지의 실수가 나오지 않았다면 양상이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었다.
임희정은 침착했다. 후반 라운드를 시작한 후 12번과 13번 홀(이상 파4)에서 그의 세컨드 샷이 살짝 흔들렸다. 모두 그린 바로 옆의 러프에 들어갔지만, 훌륭한 리커버리 샷으로 핀 옆에 붙여 연속으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13번 홀에선 박민지가 먼저 버디를 잡아내 흔들릴 법도 했지만 침착하게 공을 빼냈다.
임희정과 박민지 사이의 긴장감은 최종 2개 홀에서 무너졌다. 박민지가 17번 홀(파3)에서 더블보기, 18번 홀(파4)에서 보기를 기록하며 한꺼번에 3타를 잃었다. 반면 임희정은 15번 홀(파4)에서 이날 유일한 보기를 기록했을 뿐 가장 어려운 후반 3개 홀을 모두 파 세이브로 막아내며 우승을 굳혔다. 박민지는 12언더파 단독 3위를 기록했다.
올 시즌 임희정은 시련을 겪었다. 미국 전지훈련을 마친 후 4월 초 메디힐 챔피언십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다. 천만다행으로 타박상에 그쳤지만, 후유증이 이어졌다. 교통사고 이후 임희정은 두산매치플레이를 제외하고 톱10에 들어가지 못했다. “근육이 빨리 굳어버리는 게 가장 괴로웠다”는 임희정은 이번 대회에서도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하면서 근육을 풀었다.
국가대표 출신 임희정은 2019년 프로에 데뷔, 루키 시즌에만 메이저 우승(KLPGA 챔피언십)을 포함해 3승을 올렸다. 2020년과 2021시즌 모두 특별한 슬럼프 없이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했으나, 우승 운이 잘 따르지 않아 2021년 1승에 그쳤다.
임희정은 오히려 그런 결과 때문에 우승에 조바심이 났다고 고백했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에도 “무조건 전반기에 1승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흔들리는 듯했던 임희정은 영리한 코스 공략과 견고한 샷으로 가장 어렵다는 대회에서 신기록 세우며 살아났다.
임희정은 경기 후 “20언더파를 최종 목표로 했는데 한 타가 부족했다. 하지만 어려운 코스에서 최저타 기록을 세운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솔직히 1, 2라운드까지는 여유가 없었는데 3라운드에서 내 플레이가 나온다고 느꼈다. 마지막 날은 긴장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여유롭게 했다”고 덧붙였다.
임희정이 밝힌 목표는 시즌 3승이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우승 상금 3억원을 추가해 상금 랭킹 2위(4억619만6000원)로 껑충 올라섰다. 상금랭킹 선두 박민지(4억9403만원)를 바짝 추격했다.
한편 19일 남춘천 컨트리클럽(파72·7279야드)에서 끝난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총상금 10억원)에서는 이준석(34)이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우승했다. 이규민을 한 타 차로 따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