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들은 어떤 사람이고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끝날 때까지 확신할 수 없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마치 관객들을 안개 속에 떨어뜨리고 형사 해준(박해일 분)과 함께 숨은그림찾기를 하게 만드는 것 같다.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헤어질 결심’의 언론 시사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박찬욱 감독과 두 주인공인 박해일, 탕웨이가 참석해 영화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질 결심’은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을 두고 담당 형사인 해준과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가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탕웨이는 한국어 연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박해일은 처음으로 박찬욱 감독 작품에 출연해 탕웨이와 호흡을 맞췄다. 박찬욱 감독에게는 약 16년 만의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 아닌 영화다. 박 감독은 “처음부터 등급을 어떻게 해야겠다를 염두에 두고 만들지는 당연히 않았다”면서 “그저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어 “처음에 그런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주변에 이야기를 하니까 ‘그러면 노출도 굉장하고 강한 영화겠군요’라는 반응이 오더라. 그때 깨달았다. 그것과 반대로 가야겠다는 걸”이라면서 “어른들의 이야기인 만큼 더 감정에 집중하고 싶었다. 강렬하고 휘몰아치는 감정보다는 은근하고 숨겨진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를 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수위는 낮추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러한 작품 톤에 맞게 조용하다. 격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치는 가운데서도 이를 절제하고 숨기는 덕에 관객들도 ‘저 사람의 진짜 심리는 무엇일까’ 덩달아 고민하게 된다. 탕웨이는 “서래는 굉장한 고난과 힘듦을 경험한 사람이다. 마치 장녀처럼 모든 것들을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면 된다.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잘 드러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숨기는 것 자체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봤다”며 “기묘하게도 내 연기가 감독님이 연출해주신 것과 맞아들어 잘 표현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박해일은 “감독님이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셔서 배우가 표현해야 할 감정의 톤이 어떻겠다 생각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수사극 안에서 해준이라는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인 서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했다. 진심을 다 드러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해준은 가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의심을 하며 진심을 파악하고자 하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감정을 변주해갔다”고 말했다. 영화는 눈, 안개 등 시야와 관련된 상징을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보고 있지만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태’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즉 관객들도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함께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은 “사실 형사와 아름다운 여성 용의자가 밀고 당기는 두뇌게임을 한다는 설정은 흔하지 않나. 영화 ‘원초적 본능’도 있고. 이런 장르 안에서 통용되는 관습이 있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면서 “나는 영화가 적어도 절반을 지나갈 때까지는 관객들이 ‘내가 보는 영화가 이런 영화구나’라고 짐작을 하고, 그 후에 ‘내 선입견과 영화가 다르게 흘러가네’라고 깨달으며 즐거움을 얻기를 바랐다. 서래를 흔히 말하는 팜므파탈로 단정하고 지레짐작하면서 가다가 종국에는 ‘내가 저 여자를 잘못 봤구나’라는 생각까지 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연출에서의 의도를 공개했다.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박해일과 탕웨이가 호흡을 맞춘 ‘헤어질 결심’은 오는 29일 개봉한다. 138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