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영국 여왕이 사랑한 클럽은?
일간스포츠

입력 2022.06.22 05:20 수정 2022.06.20 15:41

김식 기자
영국 왕실은 오랫동안 스포츠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인 앤 공주는 유럽 승마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데 이어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 영국 대표로 참가했다. 앤 공주의 딸 자라는 2012 런던 올림픽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 영국 왕실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되었다. 당시 시상식에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자 어머니인 앤 공주가 딸 자라에게 메달을 수여하는 진귀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승마 외에도 왕실 인사들은 테니스, 폴로, 럭비, 스키, 크리켓, 축구 등 다양한 스포츠 종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66 월드컵에서 우승한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 바비 무어에게 우승컵을 전달한 후 웃고 있다 (출처: 여왕 공식 인스타그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66 월드컵에서 우승한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 바비 무어에게 우승컵을 전달한 후 웃고 있다 (출처: 여왕 공식 인스타그램)

하노버 왕조의 빅토리아 여왕은 사촌이자 독일인 앨버트 공과 결혼해 영국 왕실은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 시대를 맞이한다. 이로써 영국 왕실은 친가와 외가 모두 독일계 왕조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1914년에 발발하면서, 영국 내에서 반(反) 독일 감정이 일어난다. 곤경에 빠진 당시 영국 왕 조지 5세는 독일계 가문명을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이에 생존을 위해 영국 왕실은 왕조의 문장에서 작센 가문의 흔적을 지우는 등 독일과의 관계를 끊었다. 이때 가문명도 왕실의 오랜 터전이었던 윈저 성의 이름을 따 ‘윈저 왕조(House of Windsor)’로 바뀐다.
 
해군 장교 출신이었던 조지 5세는 유럽에서 군주제가 몰락하고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설치던 시절 영국 왕으로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대영제국은 그의 재임 시절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즉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린 군주가 조지 5세였다.
 
조지 5세는 검소한 삶을 살았고, 자식들 교육에도 엄격했다. 하지만 그의 장남 에드워드는 파티를 즐기고, 기혼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는 말썽꾸러기였다. 장남에 실망한 조지 5세는 차남인 앨버트와 손녀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잇기를 희망했기에 “에드워드가 절대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갖지 않기를 바란다”는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아울러 조지 5세는 “내가 죽은 후 에드워드가 왕이 되면 12개월 안에 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했다.
 
1936년 조지 5세가 서거하자 장남은 왕위를 물려받아 에드워드 8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2번의 이혼 경험을 가진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사랑하는 세기의 로맨스를 벌이며, 왕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아버지 조지 5세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다.
 
결국 공석이 된 왕 자리에 에드워드의 동생 앨버트가 오르며 조지 6세가 된다. 소심한 성격의 조지 6세는 사실 왕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특히 그는 말을 더듬는 치명적인 버릇이 있었는데, 이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이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콜린 퍼스가 조지 6세를 연기해 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에 감동스럽게 그려져 있다.  
 
한편 조지 5세 시절인 1927년 잉글랜드축구협회(FA)가 주관하는 FA컵에는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알프레드 월은 조지 5세의 사랑을 받던 찬송가 ‘나와 함께 하소서(Abide with Me)’를 결승전 식전 행사에 도입했다. 이 찬송가는 삶과 죽음을 통틀어 하나님이 화자와 함께 계시기를 바라는 기도로, 1912년 타이타닉 호가 대서양에서 침몰하던 당시 선상 밴드가 연주한 곡이기도 하다.
 
이후 ‘나와 함께 하소서’는 지금까지 매년 FA컵 결승전에서 불리고 있다. 밴드의 연주와 함께 초대 가수가 선창하면 관중은 이를 따라 부르는데,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만은 특별한 믿음의 순간이라고 한다. 럭비 리그도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1929년부터 지금까지 챌린지컵 결승전에서 이 곡을 연주하고 있다.  
 
왕의 자리가 버거웠고 2차 세계대전 중 국왕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치르면서 건강이 악화한 조지 6세는 1952년 56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왕위를 이어받은 그의 장녀가 현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다. 결국 조지 5세의 소원대로 차남에 이어 손녀가 왕위에 앉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FA컵 결승전을 여러 차례 직접 관람하는 등 축구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국가의 수장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여왕은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했다.  
 
여왕은 아스널 FC가 2006년 새 홈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개장할 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남편 필립 공작을 대신 보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이듬해 아스널을 버킹엄 궁전으로 초대해 다과를 가졌고, 당시 감독이었던 아르센 벵거와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서 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파브레가스는 언론에 여왕이 아스널 팬이라고 밝혔다.
 
2016 년 여왕의 90회 생일을 맞아 웨스트 햄이 트위터에 올린 축하 인사. (출처 : 클럽 트위터)

2016 년 여왕의 90회 생일을 맞아 웨스트 햄이 트위터에 올린 축하 인사. (출처 : 클럽 트위터)

하지만 영국 신문사 데일리 미러의 2009년 보도에 의하면 여왕이 오랫동안 사랑한 팀은 해머스(The Hammers)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동런던 클럽 웨스트 햄이다. 여왕은 왕실 직원들이 밀월FC에 대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듣고, 자신은 밀월과 앙숙 관계인 해머스의 팬이라고 살짝 밝혔다는 것이다. 여왕의 뜻밖의 고백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여왕의 평소 이미지와 과격한 팬을 많이 거느린 웨스트 햄과는 너무나 큰 간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웨스트 햄의 본거지인 업튼 파크(Upton Park)에서 생활한 적 있는 필자 입장에서도 여왕의 발언은 정말 뜻밖이었다. 필자가 런던 전역에서 살아봤지만 업튼 파크만큼 살벌하고 밤에 혼자 나가기 싫은 지역도 없었다.
 
여왕의 웨스트 햄 사랑은 클럽의 가장 성공적인 감독이었던 론 그린우드에 대한 존경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여왕은 해머스를 1965년 유럽피언 컵 위너스 컵 정상에 올려놓은 그린우드 감독을 여러 번 만났고,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아울러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 공군의 집중적인 폭격에도 굴하지 않았던 ‘동런던 시민(East Enders)’에 대한 여왕의 존경심도 해머스를 응원하게 만든 계기였다.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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