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는 지난주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였다. 6경기에 출전, 타율 0.429(21타수 9안타) 2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장타율(0.714)과 출루율(0.538)을 합한 OPS가 1.252로 20타석 소화 기준 리그 1위. 17~18일 열린 LG 트윈스전에선 이틀 연속 3안타를 몰아치기도 했다. 조아제약과 일간스포츠는 6월 셋째 주 최우수선수(MVP)로 이정후를 선정했다. 이정후는 "6월 들어 타격 리듬이나 밸런스가 많이 잡혔다. 팀이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데 이렇게 주간 MVP까지 타게 돼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이정후의 타격은 기복이 거의 없다. 2017년 데뷔 후 5년 연속 '규정 타석 3할'을 달성했다. 흔들림 없는 '타격 기계'지만 이달 초 잠시 부침을 겪었다. 지난 3일부터 7경기 타율이 0.250(28타수 7안타)에 머물렀다. 꼬박꼬박 출루는 했지만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은 아니었다.
그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1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타수 4안타(2홈런) 7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프로 첫 만루 홈런과 연타석 홈런을 쏘아 올렸고, 개인 한 경기 최다 타점(종전 6타점)까지 경신했다. 이정후는 "이 경기 전까지 (타석에서의) 리듬이나 밸런스가 잡히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며 "KIA 3연전(10~12일)에 들어가기 전 강병식·오윤 타격 코치께서 내가 좋았을 때의 모습을 이야기해주셨다. 그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연습하니 리듬과 밸런스가 잡힌 것 같고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이정후의 올 시즌 타구 속도는 139.5㎞/h(인플레이 타구, 20일 기준)다. 지난 시즌보다 1.9㎞/h가 빨라진 데뷔 후 최고 수치. 적절한 발사각이 어우러지면서 홈런을 벌써 12개나 때려냈다. 전반기도 마치기 전에 지난해 기록한 7개를 넘어섰다. 2020년 달성한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15개) 기록을 경신할 수 있는 페이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이종범 LG 트윈스 퓨처스 감독)가 '홈런은 치려고 하지 않아도 나이를 먹으면 힘이 붙어 나올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씀이 맞는 것 같다"며 "꾸준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힘이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타구 속도가 올라간 것 같다. 홈런이 많이 나오는 이유도 동일하다"고 했다.
홈런만 잘 치는 게 아니다. 이정후는 3000타석 소화 기준 KBO리그 역대 타격 1위다.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타격의 달인' 고(故) 장효조(0.331)와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지난해 데뷔 첫 타격왕을 차지했지만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작년에 잘했다고 해서 올해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 선수라면 항상 지난 시즌보다 잘하고 싶어 해야 하고, 거기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한다. 작년에 했던 걸 빨리 잊고 다음 시즌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해야 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후는 결연한 각오로 매 경기를 나선다.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앞만 보고 뛰어간다. 그는 "시즌 중에는 단점을 보완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규시즌은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서 수정하려고 하면 타석에서 투수에게 집중할 수 없다"며 "그렇게 되면 투수와 싸우는 게 아니라 나와 싸우는 셈이다. 시즌 중에는 보완할 점이 있다고 해도 절대 수정하지 않는다. 연습 때 가벼운 변화는 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시즌이 끝나고 고민한다"고 강한 어조로 답했다.
키움의 간판타자 박병호는 지난겨울 KT 위즈로 이적했다. 수년간 팀을 이끌었던 그가 팀을 떠나면서 이정후를 향한 기대는 더 커졌다. 지난달 12일 베테랑 외야수 이용규가 전열에서 이탈한 뒤에는 임시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이정후는 "부담은 없다. 물론 감독님이나 코치님, 팀 동료들이 내게 많은 기대를 하는 거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야말로 코칭스태프와 팀 동료들을 많이 믿고 있기 때문에 혼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치지 않고 시즌을 마쳤으면 한다. 또 팀이 좋은 성적(21일 기준 리그 2위)을 내고 있는데, 이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더 잘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