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25·NC 다이노스)는 꽤 흥미로운 투수다. 왼 전완부(팔꿈치와 손목 사이 부분) 피로골절과 오른 햄스트링 부상으로 무려 570일 넘는 공백기를 거친 뒤 지난달 28일 복귀, 괴물 같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23일 기준으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0.31(28과 3분의 1이닝 1실점). 0.31은 시즌 첫 다섯 번의 선발 등판에서 기록한 KBO리그 역대 최저 3위에 해당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구창모가 올 시즌 개막전부터 던졌다면 다승을 비롯한 투수 순위표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페이스가 놀랍다"고 했다.
구창모만 만나면 타자들이 쩔쩔맨다. 구창모의 피안타율은 0.162. 득점권에선 피안타율이 0.083(36타수 3피안타)까지 떨어진다. 이닝당 출루허용(WHIP)이 0.87에 불과할 정도로 득점은커녕 출루 자체가 어렵다. 박석진 NC 투수 코치는 "구창모는 디셉션(투구 시 공을 숨기는 동작)이이 좋고 팔 스윙이 짧다. 타자의 투구 판단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디셉션은 타자가 체감하는 공 스피드를 끌어올릴 수 있는 투수의 '무기'다. 최대한 공을 숨긴 상태에서 던지면 타자가 투구를 판단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진다. 구창모의 팔은 와인드업 시 앞으로 내딛는 코킹(Cocking) 동작에서 다른 투수보다 작은 원을 그리며 순식간에 돌아간다. 선동열 전 야구대표팀 감독은 구창모에 대해 "채찍으로 때리듯 공을 던진다"고 했다. 팔 스윙까지 빠르니 타자 입장에선 이중고다. 릴리스 포인트가 잘 보이지 않는데 그 '포인트'마저 순식간에 지나가는 셈이다.
구창모는 '피치 터널'까지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피치 터널은 투수가 공을 던진 순간부터 타자가 구종을 판단할 때까지의 구간을 일컫는다. 투구는 0.4초 만에 완료된다. 눈 깜짝할 순간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데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투구 폼과 공의 초기 궤적이 비슷하다면 타자가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짧아진다. 박석진 코치는 "구창모는 구속도 빠르고 터널링(타자가 구종을 판단하기 어려운 구간)까지 수준급이다.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팔 스윙까지 비슷해 타자 입장에선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치 터널'의 위력을 배가하는 건 구속과 제구다. 구창모는 22일 KT 위즈전에서 직구 최고 구속 148㎞/h를 기록했다. 컨디션이 더 올라오면 150㎞/h까지 충분히 가능하다. 구속이 빠르지만 그렇다고 제구(9이닝당 볼넷 2.83개)가 불안한 것도 아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구창모는 올 시즌 직구(54.4%)와 슬라이더(23.5%) 비율이 80%에 육박한다. 1군 등판이 잦아지면서 구종 노출이 잦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위력적이다. 특히 슬라이더 피안타율이 0.083으로 '언터처블'에 가깝다.
NC 손아섭은 "(구)창모는 일반적인 투수들과 비교해 타격 타이밍을 잡기가 까다롭다. 디셉션도 좋은데 팔 스윙까지 짧아 갑자기 공이 날아오는 느낌이다. 게다가 직구와 변화구의 터널링까지 우수해 타격 직전까지 구종을 예상하기 힘들고 판단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지난 시즌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손아섭은 통산 타율이 0.324에 이르는 교타자다. 하지만 구창모 상대 타율은 0.190(21타수 4안타)로 좋지 않았다. 손아섭은 "TV로 구창모의 피칭을 보면 '저 공에 왜 헛스윙을 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만큼 (구창모의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 근접했을 때 변화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구창모의 공은 베일에 가려진 채로 누구보다 빠르게 ‘터널’을 뚫고 나온다. 긴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그가 '난공불락'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