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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s] ‘홈즈’ 손미나 “빌렸던 집의 옆집 호나우두·지젤 번천 살아”

전 KBS 아나운서 손미나가 놀라운 이웃을 자랑했다.11일 방송된 MBC ‘구해줘! 홈즈’에는 손미나가 복팀 게스트로 출연했다.이날 양세형은 “전 세계에 (손미나의) 친구가 있다. ‘구해줘! 홈즈’ 스페인 편 촬영 당시 봤던 집도 손미나 지인의 집이었다”고 밝혔다.이에 손미나는 “마추픽추에 가도 친구가 있다. 어디를 가든 친구들의 집이 있다”고 해 놀라움을 안겼다.이를 들은 김숙이 “약간의 부작용이 있다. 어느 날 손미나에게 전화가 오더니 ‘포르멘테라로 와’라고 하더라. 나는 가평 펜션인 줄 알았다”고 하자 손미나는 “그런 제안을 친구들에게 안 하기 아까웠다”고 말했다.이어 “빌렸던 집의 옆집에 호나우두가 살고, 그 옆집에 지젤 번천이 산다. 스타들이 모여드는 섬이라 피자 먹다가 볼 수 있다. 멋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한편 ‘구해줘! 홈즈’는 매주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된다.이세빈 기자 sebi0525@edaily.co.kr 2024.04.1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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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진 아나, "살 빼기 위해 미세먼지에도 걷는다" 요가로 다져진 몸매 '깜놀'

프리랜서 아나운서 서현진이 요가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를 드러내 화제다.서현진은 23일 자신의 개인 채널을 통해 "까꿍. 오랜만에 비하요가 내 포토존에서. 요가 끝나고 뱅뱅사거리에서 집까지 걸어옴"이라는 글과 함께 두 장의 근황 사진을 올려놨다.이어 "돼지런하게 먹으면서 요가만으론 살 빼기 어렵습니당.. 미세먼지 웬만하기만 하면 무조건 걸어요. 하루 4km 정도 무적권! (이거 생각보다 어려움) 저녁에도 걸을 예정."이라며 매일 운동에 진심인 일상을 강조했다.이와 함께 그가 공개한 사진에서 서현진은 블랙 브라톱에 레깅스를 매치해, 군살 제로 몸매를 드러냈다. 탄력 넘치는 애플힙과 11자 각선미가 시선을 강탈했다. 또한 노메이크업에도 우윳빛깔 피부를 과시해 동안매력을 풍겼다.그런가 하면, 서현진은 전날인 22일에는 손미나 감독의 시사회에 참여해 의리를 과시했다. 서현진은 이날 "손미나 선배.. 아 오늘은 손 감독님 작품 시사회 보러. 지난해 봄 스페인 산티아고 800km 순례길을 걸으며 선배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깨들음과 성장, 더 깊이 자신을 만나는 과정을 담았다고 해요"라며 손미나와 함께 찍은 시사회 현장 사진을 게재했다. 그러면서 "선배가 어느 인터뷰에서 이 길을 걷기 전과 후 인생이 완전 달라졌다고 하는데, 아중에 아이 키워놓고 은퇴 후 남편이랑 단둘이 꼭 걷고 싶은 길..선배의 영화 보면서 미리 그 감동을 느껴 보려구요. 최근에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민간인 최고의 영예인 시민 공로 십자훈장을 받은 선배님.. 우리 후배들에겐 진짜 보는 것만으로도 늘 자극이 되고 너무나 의지가 되는 존재예요 앞으로 선배의 활약 늘 응원하구 젤 먼저 축하할게요"라고 선배 방송인인 손미나를 열심히 응원했다.공채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 방송인의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과, 우정에 네티즌들도 공감하며 응원을 보냈다. 네티즌들은 "레전드급 아나운서 두분의 우정 보기 좋아요", "멀티테이너인 아나운서들, 대단한 능력자이십니다", "영화 꼭 보러 갈게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한편 서현진은 지난 2001년 제45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선 하이트로 데뷔했으며 2004년부터 2014년까지 MBC 아나운서로 활동했다.이후 프리랜서로 전행했으며, 지난 2017년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또한 손미나는 최근 스페인 순례길을 담아낸 다큐 영화 '엘 카미노'의 메가폰을 잡아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최근 손미나는 스페인의 펠리페 6세 국왕으로부터 민간인으로서는 최고의 명예인 시민공로십자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이지수 디지털뉴스팀 기자 2023.03.2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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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연출 다큐 ‘엘 카미노’ 29일 공식 개봉

KBS 전 아나운서 손미나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달 말 관객들과 정식으로 만난다.손미나의 소속사 우쥬록스엔터테인먼트는 손미나가 제작 및 감독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영화 ‘엘 카미노’가 이달 달 전국 CGV에서 개봉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우쥬록스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방송인, 유튜버, 작가, 편집인, 사업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온 손미나가 이번에는 전국 CGV에서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 감독을 맡았다”며 “오는 29일 전국 개봉하는 만큼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큰 스크린 화면으로 느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엘 카미노’는 지난해 봄 손미나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나 800km를 직접 걸으며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과정과 자연과 전 세계인들이 전하는 위로를 영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마법 같은 길로 꼽히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손미나가 찾은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관객들과 만난다.손미나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택한 것은 모두가 지치고 힘겨웠던 코로나19 팬데믹의 끝 시점이다. 한국인들은 이곳을 찾는 전 세계인들 가운데 7위를 차지할 정도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갖고 있따.놀랍도록 아름다운 자연과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고,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뜨겁게 소통하는 길로 사랑받고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다양한 면면을 오는 29일 영화 ‘엘 카미노’에서 확인할 수 있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03.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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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스페인 방송 출연 소감 "최선 다했다···韓 자랑스러워" [전문]

KBS 아나운서 출신 작가 손미나가 스페인 방송 출연 소감을 밝혔다. 손미나는 지난 29일 자신의 SNS에 "스페인 방송 출연 영상이 도착했어요. 유튜브 채널 〈손미나〉 찾아오시면 한글 자막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방송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손미나가 스페인 국민 아나운서 수사나 그리소가 진행하는 50년 정통의 시청률 1위 시사토크쇼 '국민의 거울'에 출연해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에 관해 인터뷰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날 방송에서 손미나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19 확산을 잘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정부의 적극적 확진자 동선 확인과 전수조사, 그리고 검사"라고 밝히며 한국의 방역 내용을 유려한 스페인어로 정확히 전달했다. 특히 유럽 등 해외에 잘못 알려진 부분인 '개인정보유출'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했다. 손미나의 설명에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한국은 시민의식과 전염병 방역에 있어 세계인의 최고 모범 답안 같다. 우리 역사에 기록될 일인 것 같다"고 극찬했다. 해당 소식을 SNS를 통해 전한 손미나는 "대한민국이 시민 정신과 방역에 있어 전 세계의 최고 모범케이스라고 감탄하며 부럽다고 입을 모으는 스페인 기자들 덕에 보람 뿜뿜!!! 한국인임이 새삼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라고 영상 시청을 독려했다. 이어 "소리도 잘 안 들리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또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사전 질문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최대한 잘 전달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말 자랑스럽고, 지금 이대로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우리 끝까지 성숙한 시민의식 지켜나가요"라고 전했다. 이를 접한 누리꾼들은 "민간외교관 활약이다", "멋져요", "자랑스럽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하 손미나 SNS 글 전문 스페인 방송 출연 영상이 도착했어요. 유튜브 채널 〈손미나〉 찾아오시면 한글 자막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스페인과 중남미 시청률 1위, 50년 정통의 시사 정보 토크 프로그램인데요, 국민 아나운서인 수사나 그리소 씨와 생방송으로 연결해 인터뷰를 했어요. 대한민국이 시민 정신과 방역에 있어 전 세계의 최고 모범케이스라고 감탄하며 부럽다고 입을 모으는 스페인 기자들 덕에 보람 뿜뿜!!! 한국인임이 새삼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소리도 잘 안 들리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또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사전 질문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최대한 잘 전달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많이 봐주시고 구독도 해주시고요! 우리나라 정말 자랑스럽고, 지금 이대로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우리 끝까지 성숙한 시민의식 지켜나가요! 홍신익 기자 hong.shinik@joongang.co.kr 2020.03.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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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스페인 방송서 韓 코로나19 대응 공유…"세계 최고" 극찬

아나운서 출신 작가 손미나(49)가 스페인 방송에 출연해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체계 우수성을 전파했다. 손미나는 최근 스페인 시사프로그램 ‘국민의 거울’에 화상 연결로 출연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코로나19 확산세를 잘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다음과 같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확진자 동선확인 및 전수조사,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유, 성숙한 시민의식 등을 꼽았다. 이날 프로그램 진행자인 수사나 그리소 아나운서는 “이 세계적인 전염병 위기 대응의 가장 훌륭한 예로 한국이 늘 언급된다”며 “한국과 스페인 두 나라의 환경이 비슷한데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사망자 수가 적은 것이 솔직히 스페인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놀랍다”고 언급했다. 이에 손미나는 “31번 확진자가 나왔을 때 정부는 그분이 종교집단 예배에서 적어도 1000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함께 예배한 이들을 찾아내 의무적으로 검사에 응하도록 했을 뿐 아니라 그 사람들과 밀접접촉한 사람들도 모두 검사를 받도록 독려했다”며 “그러니까 그날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매일 1만5000~ 2만건의 검사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이에 진행자가 “확진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하게 관리했다”면서 “사생활 침해나 인권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느냐”고 묻자 손미나는 “개인정보는 일절 유출되지 않았다”며 “확진자 이름이나 정확한 나이, 주소 등은 공개 하지 않고, 며칠 몇시에 어디에 머물렀고 어떤 대중교통을 이용했는지를 공개해 자기도 모르게 확진자와 같은 장소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얼른 가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답했다. 손미나는 또 “성숙한 시민이라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한국에서 배운다”는 진행자의 언급에 “시민의식이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도시 봉쇄나 전 국민 자가격리 같은 강수를 두지 않았다. 다만 학교들은 대학까지도 모두 개학을 미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미나는 “학교 외에는 정부가 몇 가지 룰을 정했다”며 “예를 들어 체육·종교시설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서로 2m 간격을 두도록 하고 그게 불가능하면 닫도록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도 물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은 이런 국가의 방침과 권유를 존중하고 잘 따르고 있다”고 덧붙였다. 손미나의 설명에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한국은 시민의식과 전염병 방역에 있어 세계인의 최고 모범 답안 같다”며 “우리 역사에 기록될 일인 것 같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손미나가 해외에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체계 우수성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해당 영상 등이 화제를 모으자 손미나는 29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인임이 새삼 자랑스러웠다”는 출연 소감을 밝혔다. 손미나는 “소리도 잘 안 들리는 열악한 환경이었고 또 워낙 급박한 상황이라 사전 질문을 받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을 최대한 잘 전달하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우리나라가 정말 자랑스럽고, 지금 이대로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끝까지 성숙한 시민의식을 지켜나가자”고 독려했다. 정혜정 기자 jeong.hyejeong@joongang.co.kr 2020.03.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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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홈즈' 첫 해외 매물 도전…바르셀로나 이색적인 풍경 볼거리

'구해줘 홈즈'가 첫 해외 매물 찾기에 나섰다. 이색적인 풍경이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매김하며 호응을 얻었다.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7일 방송된 MBC '구해줘! 홈즈'는 메인 타깃인 2049 시청률 1부 2.6%, 2부가 3.8%를 기록하며 30주 연속 동 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수도권 기준 가구 시청률은 5.2%, 6.1%를 나타냈으며, 2부 시청률은 동 시간대 1위였다. 분당 최고 시청률은 가구 기준 6.9%까지 치솟았다.이날 방송에는 이주 가족 특집으로 먼저 부산으로 이주 계획 중인 의뢰인 가족이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이들은 최종 매물로 홍은희와 신은정, 임성빈이 소개한 '4방이 화4한 집'을 선택했다. "넉넉한 방의 개수와 멋진 테라스가 마음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주 가족 특집 2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주 계획 중인 의뢰인 가족이 등장했다.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의뢰인 부부는 남편의 회사가 있는 산쿠가트 인근 지역을 원했다. 전세 개념이 우리와 달라 월세만 있는 바르셀로나의 특성상 한 달에 1500~1700유로까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복팀에는 양세형과 이시언, 현재 여행 작가로 활동 중인 손미나가 출격했다. 덕팀에는 김숙과 장윤주 스페인 유학파 건축가 오영욱이 맞춤형 코디로 매물 찾기에 나섰다. 방 구하기에 앞서 스페인에 거주 중인 오영욱은 김숙과 장윤주가 머물 숙소를 발품 팔아 준비했다. 오영욱은 발코니 뒤 감쳐줘 있던 가우디의 파밀리아 성당 전경을 보여줬다.먼저 덕팀의 숙 원정대는 첫 번째 매물로 '없는 게 없는 트리풀 하우스'를 소개했다. 스페인의 천연 풀밭과 넓은 풀장 그리고 풀 옵션 가전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특히 방들과 분리된 넓은 거실, 파티를 즐기기에 충분한 넓은 발코니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두 번째 매물로 산쿠가트 지역 중심부에 위치한 '기찻길 옆 갤러리 하우스'를 찾았다. 각종 상점과 병원 등 편의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수동식 여닫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40년 된 건물이지만 내부는 리모델링으로 최신식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방들이 상대적으로 작고 주차의 불편함이 있었다. 좀 더 화려하고 이색적인 덕팀과 복팀의 매물이 예고돼 다음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구해줘! 홈즈'는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 35분에 방송된다.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19.10.28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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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②] '슈퍼스타' 차범근·선동열·최동원…서울올림픽 감동에 푹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①] '박치기왕' 김일에 열광하고 양정모 첫 올림픽 금에 환호[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③] 스포츠 영웅들, 국민에게 희망을 안기다[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④] 2002년 '붉은 물결' 대한민국을 휩쓸다[창간50 한국스포츠 50년 ⑤] 김연아·이상화·손흥민…천재들의 시대가 열리다 2019.09.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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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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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밝힌 연예계①]광화문, 그곳에는 연예인도 있었다

촛불 앞에 나이·성별·직업도 없었다. 100만 시민이 목청 높여 외쳤고 스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종로·남대문 등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민중총궐기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낮부터 밤까지 이어진 집회에는 주최 측 추정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집결했고 건국 이래 사상 최대의 촛불이 켜졌다.스타들도 여러 방식으로 집회를 지지했다. 누군가는 광화문으로 나갔고 집회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누군가는 SNS에 뜻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김미화·김제동·전인권·이승환·조PD 등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집회 공연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려 연설과 함께 무대 공연을 펼쳤다.김규리·김여진·김동완·문성근·안소미·오창석·이기우·이엘·이청아·지소울·허지웅 등은 집회에 참석했고 김효진·나르샤·레이먼 킴·손미나·솔비·윤하는 SNS에 강경한 뜻을 남겼다. 고소영 ·김유정·서신애는 오후 7시 항의의 전등끄기에 동참했다. #연설 #공연 #촛불 너도나도 '광화문行' 김미화·김제동·이승환은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정부를 향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집회 참석 직전 페이스북에 안전집회를 당부한 김제동은 오후 2시부터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민이 진정한 권력자이자 주권자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일개 권력자다" "혼군은 몰아내는 것이 맞다. 백성을 괴롭히게 하면 더 이상 임금이 아니다"고 밝혔다. 오후 6시 무대에 오른 김미화 역시 시민들을 독려하며 청와대를 향해 쓰리랑부부 유행어 "무조건 방 빼!"를 외쳤다.이승환은 오후 9시 넘어 공연을 시작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한, 그래서 마냥 창피한 요즘 더욱 분발하고 있는 이승환이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요즘 영문도 모른 채 정신적인 폭력을 당하는 느낌이다. 샤먼퀸을 위해 부른다"며 '덩크슛' 가사 일부를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불렀다.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을 든 스타들도 상당하다. 배우 문성근·김여진이 참석했고 김규리는 의경을 함께 걱정했으며 작곡가 윤일상은 광화문역 상황을 생중계 했다. 이엘은 시청 현장 사진을, 오창석은 현장에서 촛불을 든 사진과 '광화문 촛불집회 바른 나라를 위해 바른 소리를 냅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기우·이청아 커플도 거리로 나갔다. 이기우는 세월호 리본과 'TRUE'라는 글자를 적은 손등을 공개하며 '광화문 촛불들 함께합니다'라는 의사를 표했다. 허지웅은 어머니와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이엘은 시청 앞에서 '독일 검찰과 공조해서 비자금 규모 파악해라. 왜 수사 거꾸로 하냐!'라는 피켓을 찍어 올리는가 하면 김동완은 지난 주에 이어 다시 한 번 광화문을 찾아 현장 한 복판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다. "변화한 대한민국 만나길" SNS 지지표명 SNS는 '주어없는' 지지 표명이 쏟아졌다. 비록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마음 만큼은 광화문을 떠나지 않았다. 배우 김효진은 아들의 사진을 걸고 '반드시 변할 것이고 변해야 한다. 응원합니다'라는 글로 강경한 뜻을 표했다. 손미나 전 아나운서는 '스페인 출장중 몬세랏 수도원에서 초를 밝혔다. 몸은 스페인 있지만 마음은 광화문에'라며 촛불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촛불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윤하는 '팩트TV' 생중계 영상 링크를 공유했고 나르샤는 '다치지 않으셨음 좋겠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함께 외치겠다. 꼭 승리하길'이라고 응원했다. 치타는 종이컵에 꽂힌 촛불 사진으로 먹먹함을 자아냈다.솔비는 '강자는 무기를 마구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어둠속에서 빛을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의 마음들이 모여 다시금 밝고 찬란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길 바라본다. 아무 사고없이 모두가 안전하기를'이라는 소신발언과 직접 그린 촛불 사진으로 진심을 드러냈다.레이먼 킴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며 장문의 글로 현 시국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저격하는 글을 남겨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지막에는 '나가신 많은 지인 분들과 이름 모를 국민분들. 부디 추운데 사고없이 무사히 깊은 뜻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못간 이 비루한 요리사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고소영·김유정·서신애는 오후 7시 '항의의 전등 끄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후 7시부터 3분간 소등하는 것으로 집회 참석을 대신했다. 고소영은 어둠 속 작은 불빛 아래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에 모든 뜻을 담아냈다. 김유정은 '2017.11.12 암흑의 세상. 7:00~7:03. 항의의 전등끄기. 집에서 함께 참여해 주세요'라며 까만 화면을 올렸다. 서신애는 '광화문에 못나오는 분들은 오후 7시부터 3분간 집에서 항의의 전등끄기 운동 동참 캠페인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암흑의세상에서 살고있는 점을 항의하는 의미에서'라며 촛불을 켠 사진을 공개했다.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 2016.11.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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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IS]촛불 앞 ★들도 100만 국민中 한명이었다

촛불 앞에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없었다.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100만 명이 목청높여 외쳤고 스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종로·남대문 등 일대에서는 최순실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민중총궐기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낮부터 밤까지 이어진 집회에는 주최 측 추정 약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집결했고, 건국 이래 사상 최대의 촛불이 켜졌다.스타들도 여러 방식으로 집회를 지지했다. 광화문으로 나갔고 집회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이들은 SNS를 통해 안전을 기원하며 그 뜻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김미화·김제동·전인권·이승환·조PD 등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집회 공연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려 연설과 함께 무대 공연을 펼쳤다.김규리·김여진·김동완·문성근·안소미·오창석·이기우·이엘·이청아·지소울·허지웅 등은 SNS에 참석 인증샷을 공개해 이목을 집중시켰다.김효진·나르샤·레이먼 킴·손미나·솔비·윤하는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SNS에 강경한 뜻을 남겼고, 고소영 ·김유정·서신애는 오후 7시 항의의 전등끄기에 동참했다.그 외 다수의 스타들이 광화문 안 팎에서 '대통령 하야'와 '대한민국의 변화'를 바랐다. 촛불 앞에서는 스타들 역시 100만 국민 중 한 명이었다.▶ #연설 #공연 #촛불 너도 나도 '광화문行' 김미화·김제동·이승환은 집회에서 공개적으로 정부를 향한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집회 참석 직전 페이스북을 통해 안전집회를 당부한 김제동은 오후 2시부터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일개' 권력자이고 시민이 진정한 권력자이자 주권자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일개 권력자다", "혼군은 몰아내는 것이 맞다. 백성을 괴롭히게 하면 더 이상 임금이 아니다"고 밝혔다.오후 6시 무대에 오른 김미화 역시 집회에 참석하기 전 '모이자! 분노하자!'라는 메시지를 SNS에 올리는가 하면 현장 대기실에서 찍은 사진을 인증해 눈길을 끌었다. 김미화는 시민들을 독려하며 청와대를 향해 쓰리랑부부 유행어 "무조건 방 빼!"를 함께 외치기도 했다.이승환은 밤 9시가 넘어서야 공연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한, 그래서 마냥 창피한, 요즘 더욱 분발하고 있는 이승환이다"고 자신을 소개한 이승환은 "요즘 영문도 모른 채 정신적인 폭력을 당하는 느낌이다"며 최순실 게이트 관련인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언급한 후 "샤먼퀸을 위해 부른다"며 '덩크슛' 가사 일부를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꿔 불렀다.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촛불을 든 스타들도 상당하다. 모두 SNS를 통해 참석을 인증하며 안전 집회를 위한 당부의 말도 전했다.배우 문성근·김여진이 참석했고 김규리는 의경을 함께 걱정했으며, 작곡가 윤일상은 광화문 역 상황을 생중계 했다. 또 이엘은 시청 현장 사진을, 오창석은 현장에서 촛불을 든 사진과 '광화문 촛불집회 바른 나라를 위해 바른 소리를 냅시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이기우·이청아 커플도 거리로 나갔다. 이기우는 세월호 리본과 TRUE라는 글자를 적은 손등을 공개하며 '광화문 촛불들 함께합니다'라는 의사를 표했고, 이청아는 '돌아가는 길. 쓰레기는 쓰레기통에를 외치며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 교복입은 학생들. 이들이 우리나라의 빛이다'며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허지웅은 어머니와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허지웅은 펄럭이는 깃발과 모자 사진을 게재하는가 하면 '판사님 저는 지난주 왔었고 요번주는 철야 작업도 있어서 오지 않으려 했는데 지방 사는 엄마가 갑자기 광화문이라고 해서 강제 소환 되었을 뿐입니다. 경찰이 미세먼지 수치를 추산하면 대기가 맑아질 듯'이라는 글로 일침을 가했다.이엘은 시청 앞에서 '독일 검찰과 공조해서 비자금 규모 파악해라. 왜 수사 거꾸로 하냐!'라는 피켓을 찍어 올리는가 하면 기수 김동완은 지난 주에 이어 다시 한 번 광화문을 찾아 현장 한 복판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다. 개그우먼 안소미·작사가 김이나·가수 지소울 등도 광화문에 있었다.▶ "변화한 대한민국 만나길" SNS 지지표명 SNS는 '주어없는' 지지 표명이 쏟아졌다. 비록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마음 만큼은 광화문을 떠나지 않았다.배우 김효진은 아들의 사진을 걸고 '반드시 변할 것이고, 변해야 한다. 응원합니다'라는 글로 강경한 뜻을 표했다. 손미나 전 아나운서는 '스페인 출장중 몬세랏 수도원에서 초를 밝혔다. 몸은 스페인 있지만 마음은 광화문에'라며 촛불 앞에서 눈을 감은 채 촛불을 들고 있는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가수 윤하는 '팩트TV' 생중계 영상 링크를 공유했고, 나르샤는 '다치지 않으셨음 좋겠다.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함께 외치겠다. 꼭 승리하길'이라고 응원했다. 치타는 종이컵에 꽂힌 촛불 사진으로 먹먹함을 자아냈다.솔비는 '강자는 무기를 마구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어둠속에서 빛을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의 마음들이 모여 다시금 밝고 찬란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 수 있길 바라본다. 아무 사고없이 모두가 안전하기를'이라는 소신발언과 직접 그린 촛불 사진으로 진심을 표했다.이와 함께 레이먼 킴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한탄하며 장문의 글로 현 시국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저격하는 글을 남겨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지막에는 '나가신 많은 지인 분들과 이름 모를 국민분들. 부디 추운데 사고없이 무사히 깊은 뜻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못간 이 비루한 요리사 반성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고소영·김유정·서신애는 오후 7시 '항의의 전등 끄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시위에 참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후 7시부터 3분간 소등하는 것으로 집회 참석을 대신했다.고소영은 어둠 속 작은 불빛 아래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에 모든 뜻을 담아냈고, 김유정은 '2017.11.12 암흑의 세상. 7:00~7:03. 항의의 전등끄기. 집에서 함께 참여해 주세요'라며 까만 화면을 올렸다.서신애는 '광화문에 못나오는 분들은 오후 7시부터 3분간 집에서 항의의 전등끄기 운동 동참 캠페인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 암흑의세상에서 살고있는 점을 항의하는 의미에서'라며 촛불을 켠 사진을 공개했다.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oins.com 2016.11.13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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