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일본시리즈 5차전이 열린 10월 26일 삿포로돔. 경기가 끝날 무렵 스탠드는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444년 만의 니혼햄 우승도 감격적이었지만 이날 경기를 끝으로 영웅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삿포로돔을 가득 메운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타석에 선 영웅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던 신조 쓰요시(34)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풀스윙. 3구 삼진을 당했다. 반드시 홈런을 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주니치의 포수 다니시게 모토노부는 “울지마. 모두 직구를 던지게 할 거야”라고 말했다.
적이면서도 자신의 마지막 타석을 빛내주려는 다니시게의 배려에 감복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풀스윙 삼진은 당연한 선택이었으리라.
우승이 확정된 뒤 동료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을 때 신조의 눈에선 또 다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눈물의 파티였다. 항상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신조의 마지막은 그렇게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우주인’ ‘외계인’으로 불리며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못낼 기발한 상상력으로 팬들을 즐겁게 했던 신조는 야구 선수라기보다 차라리 엔터테이너에 가까웠다. 팬들을 향해 “기록은 이치로에 맡기고 기억은 나에게 맡겨라”고 외쳤던 신조의 기상천외한 이벤트들을 꼽아봤다.
정회훈 기자 [hoony@ilgan.co.kr]
▲점핑캐치
외야수인 신조는 평범한 플라이도 점프해 잡아내는 화려한 수비를 선호한다. 고교시절 선배가 2층에서 떨어뜨린 달걀을 깨지지 않게 받는 훈련을 통해 익혔다.
유소년 지도자로부터 “기본기에 충실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스스로는 “점프의 최고점에서 포구를 하면 반발력으로 타구의 기세를 꺾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한신 시절 점핑 캐치를 시도하다 안면에 맞은 적도 있다.
▲돈 보단 꿈
신조는 2001년 연봉 2200만 엔(약 220만 달러)의 ‘헐값’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행을 택했다. 당시 신조를 붙잡기 위해 한신이 제시한 금액은 5년간 12억 엔. 신조는 “금액의 자릿수를 잘못 보고 계약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으나 끔찍하게 아끼던 스포츠카 페라리를 인터넷 경매에 내놓을 만큼 메이저리그를 간절히 원했다.
메이저리그 3년째 스프링캠프에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마이너 선수들을 보고 구단 수뇌부에게 “시범경기에서 나 대신 저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러나 구단으로부터‘소극적인 선수’로 낙인찍혔다. 공교롭게 그해 말 일본으로 복귀했다.
▲신조 광고판과 신조 시트
2004년 1월 후지TV의 <퀴즈. 백만장자>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승 상금을 받은 1000만 엔으로 삿포로돔 외야에 자신의 광고판을 게시했다. 퀴즈 프로에서 신조는 15문제를 모두 맞혔는데 정답이 아리송할 때는 연필을 굴렸다는 후문. 2004년부터 홈경기 때마다 외야석 100석을 자기 부담으로 준비해 소년 야구선수들을 무료로 초대하고 있다. 이른바 신조 시트이다.
▲시구도 치는 사나이
타석에서 시구자가 던지는 공을 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4년 남자 소프트볼 일본 대표 투수와의 시구식에서는 이례적으로 3구 승부를 실시해 삼진을 당했다. 그해 올스타전에서는 초등학생이 던진 공을 휘둘러 파울 플라이를 기록했다. 지난해 시즌 개막전 때는 배트를 안 가지고 타석에 들어서는 장면도 연출했다. 2005년 5월 6일 한신과의 교류전에서는 시구자로 나섰는데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분장을 하고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가면 퍼포먼스
2004년 9월 20일 다이에전에서 경기 전 동료 선수 4명과 함께 ‘파워 레인저’의 캐릭터 가면을 나눠쓰고 나와 팬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날 경기에서 신조는 9회말 굿바이 만루홈런(선행주자 추월로 단타로 기록)을 치는 등 이후 가면 퍼포먼스를 할 때마다 승리하는 묘한 징크스(4연승)를 이어갔다.
하지만 2005년 9월 19일 세이부전에서 동료 4명과 함께 자신의 얼굴을 본 뜬 가면을 쓰고 나오는 ‘5명의 신조’를 펼쳤으나 세이부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완봉패를 당했다. 그 후로 가면 퍼포먼스는 하지 않았다.
▲전자벨트. 할리 데이비슨
올스타전과 개막전은 신조의 퍼포먼스가 가장 기다려지는 경기다. 신조는 7월 21일 올스타전에서 무지개색 배트에 전자벨트를 차고 나와 화제를 모았다. 전자벨트에는 ‘NEVER MIND WHATEVER I DO FAN IS MY TREASURE (내가 뭘 하든지 내버려 둬. 팬은 나의 보물)’라는 메시지가 흘렀다.
지난해 올스타전에서는 180만 엔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스파이크를 신고 나왔다. 지난 3월 25일 삿포로돔에서 열린 퍼시픽리그 공식 개막전에서는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등장하는 화려한 입장쇼를 연출했다.
▲옷깃 언더셔츠
지난 4월 30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옷깃이 있는 언더셔츠를 입고 출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 감독의 어필로 심판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5월 7일 라쿠텐전에서도 옷깃이 달린 언더셔츠를 입고 나왔으나 그 후 심판단으로부터 사용금지를 통보받았다.
이와 관련해 신조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 외로움을 느낀다. 팬을 위해서 선수들이 여러 일을 최초로 하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고 한마디. 이 때문인지 삿포로돔의 볼보이나 배트보이는 옷깃이 달린 언더셔츠를 입고 있다.
▲고공낙하
6월 6일 한신전에서는 삿포로돔 천장에서 내려오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5연패의 무거운 팀 분위기를 날린 깜짝 이벤트. 고소공포증이 있는 신조였지만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했다.
▲황금배트
일본 통산 200홈런을 앞두고 달성시 개당 10만 엔짜리 황금배트 200개를 한정 판매하겠다고 공약. 신조는 6월 16일 200홈런을 쳤다. 다음날 오전 10시부터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황금배트가 판매됐는데 판매 개시 8분 10초만에 모두 팔렸다. 수익금은 홋카이도 청소년 스포츠를 위해 전액 기부됐다.
▲깜짝 은퇴
신조는 홈런을 칠 때마다 ‘OO타법’이라고 톡특한 타법명을 붙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4월 18일 도쿄돔에서 열린 오릭스전에서는 만루홈런 포함 2개의 홈런을 치고 히어로 무대에 섰다. 신조는 만루홈런에 대해 “28년간 마음껏 야구를 즐겼다. 올해 유니폼을 벗는 타법”이라고 말해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신조는 “개막전에서 삿포로돔이 만원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내가 할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노바운드로 잡힌다고 생각한 타구가 원바운드되거나 홈에서 잡을 수 있는 송구가 잘 되지 않는다. 이젠 그만둘 때가 됐다”고 밝혔다.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