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점차의 여유. 그래도 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나보다. 참고 참았던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았다.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는지 담배를 잡고 있는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렸다.
한화가 5회까지 3-0으로 앞선 클리닝 타임에서 만난 류재천(51)씨는 "미리 축하드린다"는 취재진의 인사에 이렇게 털어놨다. "아직 모릅니다. 요즘 4점까지는 원 찬스에 뒤집어 질 수 있으니…." 프로 데뷔 후 아들의 선발 경기를 단 1경기도 빼놓지 않고 따라 다니다보니 야구박사가 다 된 모습이다.
아버지의 초조함을 읽었을까. 아들은 6회초 무사 만루로 최대 위기를 맞았으나 단 1실점도 없이 깔끔히 고비를 넘겼다. 6회말 이범호의 투런포로 한화가 5-0으로 앞서나간 뒤 아버지는 비로소 활짝 웃었다.
류현진(20·한화)이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포스트시즌 첫승을 따냈다. 류현진은 9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2007 삼성PAVV 준PO 1차전에서 선발 6⅔이닝을 산발 8피안타 8K(2볼넷)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류현진은 5-0으로 앞선 7회 2사에서 양준혁에게 마지막 안타를 허용한 뒤 마운드를 내려왔고, 이어던진 안영명이 실점없이 이닝을 끝냈다.
프로 데뷔 2년 만에 신고한 감격의 포스트시즌 첫승. 지난해 프로 최초 신인 트리플크라운(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을 석권하며 '괴물'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포스트시즌에는 기대만큼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데뷔전인 준PO 2차전(KIA전)에서 만루홈런을 얻어맞는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기도 했다. 팀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으나 류현진은 총 5경기에 나와 승리없이 2패(평균자책점 4.30)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 등판에서 확실하게 단추를 뀄다. 투구수는 128개. 시즌 막판 보여줬던 피로 누적의 우려도 깨끗이 날렸다. 김인식 감독은 "투구수가 많기는 했지만 어차피 3차전을 못나올 것이니 조금 더 길게 갔다"고 말했다.
직구 최고 구속은 147㎞에 그쳤지만 올해 새로 익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빛을 발했다. 1회에서 심정수·박진만을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자신감을 찾은 류현진은 3회를 제외하고 매회 주자를 내보냈지만 홈베이스 만큼은 허용하지 않았다.
볼넷과 안타 2개로 무사 만루 위기를 맞은 6회에는 김한수를 얕은 외야플라이를 잡아낸 뒤 대타로 나선 박정환·강봉규를 풀카운트 접전 끝에 나란히 헛스윙 삼진으로 잠재웠다.
경기 후 1차전 MVP(상금 100만원)로 뽑힌 류현진은 "작년에 1승도 못해 오늘 마운드에 오르는 각오가 남달랐다. 타선이 초반에 점수를 뽑아주고 적시에 홈런이 터져 편안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이어 "승리보다 팀이 이기는 게 목표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낮게 던져 팀 승리에 도움이 되는 피칭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아버지 류재천씨는 "아들이 대견스럽다. 낼 아침 통화할 때 칭찬을 많이 해줘야겠다"며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구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