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23.66%의 향방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선박 건조자금 확보를 위해 현대상선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서다.
현대중공업은 올들어 회사채 발행 및 비업무용 자산매각을 통해 약 1조9400억원의 현금을 마련했다. 보유하고 있던 현대차 지분 1.45%도 매각했다. 현대중공업이 이처럼 현금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까닭은 조선업 불황에 따라 수주가 감소하고 수주 조건이 악화됨에 선박 건조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까지 현대중공업의 조선·해양부문 수주액은 56억달러에 불과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2.5%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2분기 경영실적도 영업이익 3585억원, 당기순이익 1341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2분기보다 각각 65.2%, 82.97% 급감했다.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의 수주가 늘어나면서 선수금 유입이 줄어든 것도 현대중공업이 현금부족에 시달리는 큰 원인이다. 헤비테일 방식이란 선박을 발주한 해운사가 선박대금을 공정 단계에 따라 균등분할 지급하던 기존의 관행과 달리 선박을 인도할 때 대금을 몰아주는 거래 형태다. 헤비테일 방식으로 선박을 수주하면 조선사의 선박건조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조선·해양부문 수주액 56억 달러 중 상당부분이 헤비테일 방식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헤비테일 방식의 수주가 늘어남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올해 이미 확보한 1조9000억원의 현금 외에도 1조원 가량의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같은 이유로 조선업계와 증권가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대상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2006년 각각 현대상선 지분 16.35%(2342만4037주), 7.31%(1047만9174)를 인수해 보유중이다.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의 가치는 8월31일 종가(2만7400원) 기준으로 약 9289억원에 달한다. 따라서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팔면 올해 추가로 마련해야 할 건조자금 1조원을 확보할 수 있다. 올해 이미 1조2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추가 자금 확보를 위해 또 다시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보다는 현대상선 지분을 파는 것이 재무건전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현대상선 지분 매각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증시 상황이 좋지 않아 마땅한 인수자가 없고, 인수자가 나서더라도 현대상선의 대주주인 현대그룹과 경영권 분쟁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매각하면 그 상대가 현대그룹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자금력과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현재 현대상선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곳은 현대그룹밖에 없다”며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의 화합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