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빈(26)은 '거침없다'라는 표현에 딱 맞아떨어지는 여배우다. 2005년 영화 '여고괴담4'로 데뷔후 '다세포소녀'(06) '박쥐'(09) 등 화제작에서 신인으로선 쉽지 않은 캐릭터를 거뜬히 소화해 눈길을 끌었다. '박쥐'에 출연할때에는 '신들렸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캐릭터에 심취했다. 이후 감독들은 감정폭이 넓거나 당돌한 매력이 도드라지는 역할이 있을때면 김옥빈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Mnet '오케이 펑크'에서 록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귀는 남자가 있을때에는 망설이지않고 공개열애를 선택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옥빈의 새 영화 '열한시'(김현석 감독, 28일 개봉)는 조금 의외다.
작품 속에서 튀어나올듯한 캐릭터를 연기하던 김옥빈이 한발 물러서 다른 인물을 받쳐주고 있기 때문. 영화는 시간이동 프로젝트를 연구하던 팀이 24시간뒤 자신들의 위험을 감지한후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김옥빈은 사건의 열쇠를 쥐고있는 물리학자 영은을 연기했다. 에너지를 분출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지만 은근히 강한 눈빛으로 긴장감을 조성한다. 원래의 스타일과 달라 연기하는 재미가 덜했겠다는 말에 김옥빈은 "나도 편하게 연기할 때가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언론시사회 이후 굉장히 좋아했다는 말을 들었다. 김현석 감독을 안아주기도 했다던데.
"맞다.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감독님이 설렁설렁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캐릭터가 비밀을 가진 듯한 느낌을 자아내야하고 뭔가 애매모호한 느낌이 강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를 한후 의견을 물어보려고 다가가면 그 전에 감독님이 '오케이'를 외치며 촬영을 끝내곤 했다. 정재영 선배는 '너한테 더 이상 좋은 연기를 뽑아낼수 없을것 같아 그러는거다'라고 놀리더라. 많이 불안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본후 감독님의 의도를 알수 있었다. 머릿속에 설계도가 들어가있었던거다."
-결국 촬영장에서 감독을 믿지 못했다는 말 아닌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내가 원했던건 대화하며 하나씩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는데 그게 감독님의 스타일과 안 맞았던거다. 감독님은 구상했던 그림만 완성되면 다음 컷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분이었다. 아침엔 남들보다 일찍 나오면서 밤촬영이 길어지면 짜증을 낸다. 배우보다 촬영을 빨리 접고싶어하는 감독은 처음 만났다.(웃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나니 그 스타일이 참 편하게 느껴지더라. 촬영장 분위기도 끝내주게 좋았다."
-안그래도 정재영·최다니엘 등 출연배우들끼리 참 친한것 같더라.
"진짜 친하다. 최다니엘은 한살 많은 오빠인데도 마치 동생같이 느껴진다. '인텔리 전문배우'라고 알려져있는데 안경 벗으면 완전 '허당'이다. 물론, 난 안경벗은 최다니엘이 더 좋다. 어쨌든 둘이 워낙 심하게 장난을 치다보니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싸우는게 아니냐고 착각하는 분들도 많다. 정재영 선배도 참 재미있는 분이다. 카메라 앞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평상시엔 동네 아줌마처럼 수다스럽다. 예능프로그램이라도 나가서 그런 매력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그렇게 친한 최다니엘과 키스신을 찍는게 쉽진 않았겠다.
"안 그래도 키스신은 원래 시나리오상에 없던 장면이었다. 감독님이 있으면 좋을것 같다고 하길래 '뭐하러 찍냐'고 버티다가 두 손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나중에 최다니엘이 '김옥빈과의 키스는 별로였다'는 식의 말을 하길래 발끈해 '나도 별로였다'고 외쳤다.(웃음)"
-이번 영화에서는 불같은 연기를 보여줬던 전작에 비해 임펙트가 약했다. 스스로도 아쉬울것 같다.
"아니다. 나도 좀 편하게 연기할 때가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웃음) 매번 힘든 연기만 하면서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까. 또 내 연기가 영화 전체의 밸런스를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면 그걸로 대만족이다. 작업 환경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에 마치 휴식시간을 가지는 느낌으로 촬영장에 나갔다."
-한동안 록음악에 빠져있었다. 요즘에도 음악을 좋아하나.
"요즘엔 잘 안 듣는다. 내가 원래 확 빠져들었다가 확 식어버리는 타입이다. 흥미를 느낄때 미친듯이 파고들었다가 금방 빠져나온다. 그땐 호기심이 많아 열심히 음악을 들었는데 지금은 그때만큼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요즘엔 여행에 흥미가 생겨 매번 여행계획을 짜곤 한다. 막내 동생이 대학생이라 아직 팔팔하다. 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 베낭여행을 다닌다. 지금 서유럽 쪽으로 여행계획을 짜고 있는데 이번 여행이 끝나면 인도로 넘어가려한다."
-겁도 없이 베낭여행을 잘도 다닌다.
"원래 서울에서도 얼굴을 안가리고 돌아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보는건지 아니면 무서워하는건지 잘 다가오지도 않는다. 사인해달라고 하면 욕이라도 할 것처럼 보이나보다. 사실 나는 굉장한 푼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