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톤 빌라의 연고지인 버밍엄의 지역 언론 '버밍엄 메일'이 4년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한 스틸리안 페트로프(37)에게 보낸 찬사다. 페트로프는 10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메르쿠르 아레나에서 열린 그라츠AK와 프리시즌 친선 경기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투입됐다. 2012년 3월 25일, 아스널과 치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 이후 1569일 만의 출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45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팀의 8-0 승리를 이끌었다.
페트로프의 귀환은 아스톤 빌라 팬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2006년, 당시 아스톤 빌라 감독이었던 마틴 오닐이 이적시장에서 영입한 첫 번째 선수였던 페트로프는 2012년 초까지 6시즌 동안 219경기 출전, 12골 16도움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주장까지 맡았을 정도로 두터운 신뢰를 받았던 페트로프는 2012년, 자신의 마지막 경기가 된 아스널전이 끝난 뒤 갑작스럽게 그라운드를 떠났다. 건강했던 그를 덮친 병마 때문이었다.
발열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페트로프를 기다린 것은 급성 백혈병 진단이었다. 페트로프는 그 뒤로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고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급성 백혈병이라는 치명적인 병도 축구와 팀에 대한 페트로프의 애정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그는 3년 동안 꾸준히 화학요법을 통해 병을 치료하면서 유소년팀 코치로 어린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부단한 노력 끝에 2016년 4월 선수 복귀를 선언했다.
"나는 평생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은퇴해야 했다. 이제 다시 돌아오고 싶다. 나는 아직 37세에 불과하다."
아스톤 빌라는 페트로프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병에 시달리면서도 팀에 헌신했던 레전드를 다시 받아들인 아스톤 빌라는 2016~2017시즌 복귀를 목표로 그를 훈련에 합류시켰다. 그리고 페트로프는 다시 선 그라운드에서 구단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모자람 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병마를 이겨낸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복귀전까지 잘 치러냈으니 그야말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페트로프가 은퇴한 뒤에도 전반 19분이면 그의 등번호 19번을 기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던 팬들에게는 최고의 선물 그 자체다.
◇승부 그 이상의 감동 준 '인간 승리' 표본들
페트로프처럼 치명적인 병마와 싸워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온 '인간 승리'의 감동적인 사연은 축구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바르셀로나에서 뛰었던 에릭 아비달(37)이다. 아비달은 2011년 3월 간암으로 수술을 받고 퇴원한 뒤 재활 끝에 5월 3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서 복귀했다. 9만 여 홈 관중은 기립박수로 선수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돌아온 아비달을 반겼다.
하지만 불과 1년 뒤인 2012년 3월, 아비달은 같은 부위에 종양이 재발해 간 이식 수술을 받게 됐다. 이미 한 차례 수술을 받은데다 종양 제거와 달리 간 이식 수술은 후유증이 커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났다는 비관적인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비달은 포기하지 않았다. 회복과 훈련에 매진해 몸을 만들었고 그 해 12월 팀 훈련에 다시 합류했다. 그리고 약 1년 만인 2013년 3월 1군 복귀에 이어 8월에는 프랑스 대표팀에 소집되며 '인간 승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던 파트리스 무암바(28) 역시 '기적의 사나이'로 불린다. 당시 볼턴 소속 선수로 뛰던 무암바는 2012년 3월 잉글랜드 FA컵 8강전 토트넘과 경기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놀라 숨을 죽였다.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찾지 못한 무암바는 결국 병원으로 이송됐고 경기는 취소됐다. 의식 불명 상태가 12시간 넘게 지속됐고 생사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비관적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무암바는 3일 만에 의식을 되찾고 빠른 속도로 회복해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페트로프나 아비달처럼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는 없었지만, 78분 동안이나 심장이 멈췄던 무암바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에도 그라운드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기적과 희망의 아이콘으로 부활한 신영록(29)이 있다. 이처럼 그라운드 위 '인간 승리'의 아이콘들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또다른 선수들에게 희망이 되기도 한다.
병으로 인해 잠시 그라운드를 떠나있는 성남FC의 골키퍼 전상욱(37) 역시 이들을 보며 희망을 얻고 있다.
전상욱은 올해 5월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8라운드 광주FC와 경기서 팬들에게 고별 인사를 전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병명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김학범(56) 감독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을 만큼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간 승리'를 보여준 페트로프나 아비달, 그리고 무암바처럼 전상욱도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병마를 이겨낸 '선배'들처럼, 그라운드에 다시 선 전상욱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