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여운이 남는 가을이다. LG의 가을야구는 길고도 짧았다. 뜨거운 질주로 만들어낸 기세는 전력 차이 앞에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LG 트윈스의 2016년은 충분히 행복했다.
LG는 24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와의 플레이오프(PO) 4차전에서 3-8으로 패했다. 1·2차전 원정 2연전에서도 접전 승부 끝에 패한 LG는 3차전에서 연장 11회 승부 끝에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거두며 마산행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득점 기회에서 번번이 범타로 물러나는 집중력 부재 속에 NC를 넘지 못했다. 가을 야구를 마감했다. 준PO까지 올린 기세가 너무 높았기에, 상위팀과의 정면 승부에서도 선전이 전망됐다. 하지만 전력 차이를 메우지 못했다. 뜨거웠던 LG의 2016년을 정리했다.
◇ 성적+성장을 모두 잡은 정규 시즌
정규 시즌, LG는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잡았다. 사실 기대는 크지 않았다. 지난해 하위권 성적이 그대로 반영된 전력 평가를 받고 시즌을 시작했다. 전지 훈련부터 전면에 내세운 '세대 교체'의 기틀을 다졌지만 전반기엔 성적이 따라오지 않았다. 몇몇 젊은 선수들이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이었다. 류제국과 우규민 토종 선발진은 압도적이지 못했고, 다른 팀보다 늦게 영입한 스캇 코프랜드는 기대에 못 미쳤다. 34승 45패. 승률 0.430, 8위로 전반기를 마쳤다.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가 홈런왕 레이스에 가세할 만큼 좋은 타격감을 보인 게 유일한 위안.
하지만 후반기 LG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경험을 쌓은 젊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기량을 발휘했다. 경직된 플레이가 줄었고, 과감하게 배트를 돌렸다. 경험이 재산인 수비력도 차츰 좋아졌다. 이천웅, 문선재, 이형종, 양석환 등은 '팀의 미래'에서 '현재 전력'으로 인정받았다.
베테랑 타자들은 팀의 중심이 됐다. 팀 대들보 박용택과 정성훈은 지난 8월, 나란히 역대 6·7번째 2000안타 달성 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에 있던 팀 분위기에 '고귀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반기 타격 부진에 시달리던 유격수 오지환도 '거포 내야수' 잠재력을 드러냈다.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 역대 유격수 최초로 20홈런을 기록했다.
마운드도 동반 상승세를 탔다. 대체 외국인 투수 데이비드 허프가 '복덩이'였다. 적응기를 거친 뒤엔 거침없었다. 후반기에만 7승·평균자책점 3.08을 기록했다. 12경기 중 7번이나 7이닝 이상 소화했다. 당연히 불펜 투수들이 체력을 비축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커터와 커브를 무기로 내세운 주장 류제국은 후반기에만 8승을 거뒀다. 5강 경쟁이 치열하던 8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 5연승을 거두며 LG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새 마무리투수 임정우는 6월 한 달 동안만 5패를 당하며 흔들렸지만, 적응기를 거친 후반기엔 견고했다. 15세이브를 올리는 동안 블론세이브는 1개에 불과했다. 팀 선배 류제국이 "부진한 경기 뒤에 걱정이 돼 전화를 했더니 의연하더라. 어느덧 자리에 걸맞은 투수가 됐다"며 인정할 정도. 이밖에 헨리 소사가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줬고, 셋업맨으로 올라선 무명 투수 김지용이 활력을 더했다.
◇ 뜨거웠던 쌍둥이의 가을
지난 2014년에 이어 하위권에서 가을 축제 진출을 시작했다. 하지만 팀을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KIA와의 와일드카드(WC) 결정전부터 극적인 승부가 연출됐다. 1차전에서 다른 젊은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오지환이 포구 실책을 범하며 선제 2점을 내줬다. 추격 분위기가 형성된 8회 말엔 안타를 치고 나간 유강남이 폭투 때 2루를 돌아 3루까지 쇄도하다가 아웃됐다. 상대 선발 헥터 노에시 공략도 실패했다.
하지만 2차전에서 승리하며 준PO 진출을 이뤄냈다. 주장이나 선발 투수 류제국은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이던 9회 말엔 김용의가 결승 희생플라이를 치며 LG를 고척 스카이돔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탄탄대로. 정규 시즌에서 상위 순위에 있던 넥센에게 압승을 거뒀다. 상대 에이스 앤디 밴헤켄 공략에 실패한 2차전을 제외하면 분위기와 전력 모두 LG가 앞섰다.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4차전에서 오지환의 결승 적시타로 5-4 승리하며, 마산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양상문 감독, 유지현 코치 등 지도자들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며 선수들이 압박감을 이겨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오히려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것이 좋은 기회가 됐다"고 했다. LG의 가을은 뜨거웠다.
◇ 젊은 선수들이 쌓은 값진 경험
하지만 정규 시즌 2위 NC와의 PO에서 3연패를 당했다. 내심 잠실벌 한국시리즈를 기대했던 LG팬이다. 유광점퍼를 접어야하는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는 153경기였다.
하위권으로 시작해 4위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젊은 선수들은 '기여'가 아닌 '주도'를 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선 정규 시즌에는 경험할 수 없는 중압감을 경험했다. 양상문 감독은 이들에게 적절한 임무를 부여하며 자존감을 키워줬다. WC 결정전에서 문선재는 상대 에이스 양현종의 저격수로 나서며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형종도 그저 우타자이기 때문에 선발 기회를 얻은 게 아니다. 1차전 선발로 나선 이천웅은 손맛을 봤고, 양석환은 2차전에서 정성훈을 대신해 선발로 출전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 '이천 키드'들은 큰 부침 없이 가을야구를 해냈다.
정규 시즌 활약이 미미했던 선수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 베테랑 포수 정상호는 호흡을 맞춘 헨리 소사, 류제국의 호투를 이끌었다. 타석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줬다. 양상문 감독은 PO에서 1, 2차전 선발 투수 소사와 허프를 3, 4차전에서 구원 투수로 활용하는 '강수'를 두며 이전까지 보여주지 않던 면모를 보여줬다. 3차전 소사 카드는 성공했지만, 허프는 홈런 2개를 맞고 3실점 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승부수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 감독 역시 사령탑으로서 두 번째 치르는 포스트시즌에서 진화 가능성을 보였다. LG 트윈스의 선수들과 지도자는 모두 시즌 전보다 발전했다. LG의 2017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