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한국시간) 독일축구연맹(DFB)과 인터뷰를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코메르츠방크아레나(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홈구장)의 기념관을 찾은 차범근(64)은 색이 조금 바랜 우승컵 하나를 들어 보였다. 바로 1979~198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컵 우승 트로피다.
1978~1979시즌 다름슈타트에서 한 경기만 뛴 차범근은 1979년 6월 프랑크푸르트 유니폼을 입으며 본격적인 분데스리가 인생을 시작했는데 입단 첫해에 프랑크푸르트 구단 사상 첫 UEFA컵 정상을 이끈 것이다. 그때 이후 40년 만에 다시 트로피를 품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웃었다.
"팀에 적응도 완벽히 마치기 전에 우승을 경험했다. 원하면 늘 할 수 있는 것이 UEFA컵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UEFA컵이 얼마나 힘든 대회인 줄 깨닫게 됐다.(웃음)"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성기의 문을 활짝 열었다. 1983년까지 122경기를 출전한 그는 46골을 쏟아 내며 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다. 이 기간에 차범근은 우승 트로피도 2개(1979~1980시즌 UEFA컵·1980~1981시즌 DFB포칼)나 따냈다. '차붐(Chabum·골로 수비를 폭격한다고 해서 생긴 애칭)'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때다. 그와 함께 UEFA컵 우승을 일군 칼 하인츠 쾨르벨(63)은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붐은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완벽한 공격수(der Perfekteste Stürmer)였다."
1972년부터 프랑크푸르트에서만 20년을 뛴 쾨르벨은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출전(602경기) 기록을 보유한 '전설의 철인'이다. 쾨르벨은 "차붐은 자신만의 특별한 플레이 스타일을 갖춘 '특급 스타(Super Profi)'였다"고 덧붙였다.
쾨르벨과 같은 동료 선수들만 차붐을 추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유럽중앙은행과 쇼핑가가 만나는 프랑크푸르트시의 중심부 빌리-브란트-플라츠가 대표적이다. 빌리-브란트-플라츠 역사 내에는 '프랑크푸르트의 수호자(Säulen der Eintracht)'라고 불리는 12개의 기둥이 자리잡고 있다.
각 기둥에는 '아인트라흐트 레겐덴 11(Eintracht Legenden 11·프랑크푸르트의 전설 11인)'과 대표 사령탑의 인물화가 새겨져 있다. 2013년 1월 프랑크푸르트 팬들이 직접 뽑은 것인데 이 투표에서 차범근이 프랑크푸르트 역대 최다골 기록 보유자 베른트 휄첸바인(71·420경기·160골)과 나란히 공격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차범근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감동을 주는 선수였다. 1980~1981시즌 레버쿠젠전 도중 그는 위르겐 겔스도르프에게 거친 태클을 당하며 허리 부상을 입었다. 그런데 부상은 생각보다 심각해 선수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였고, 구단에서는 상대 선수를 고소라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범근은 놀랍게도 상대 선수를 용서해 독일 축구계는 물론이고 시민들까지 놀라게 했다.
차범근은 "나는 처음 독일에 와서 독일 사람들이 굉장히 차갑고 상대팀에 대한 관심이 덜한 것 같았다"면서도 "1981년 부상 당시 제가 상대 선수를 용서한다고 하자 독일인들이 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 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10년간 옐로카드 1장만 받았으니 정말 그라운드 위에서 페어플레이한 것 아닌가 싶다. 내가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한 보답인 같다. 나 역시 늘 독일 팬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