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 우승팀 휴스턴과 KBO 리그 한국시리즈(KS) 우승팀 KIA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시즌 중에 단행한 트레이드를 지렛대 삼아 우승 동력을 만들었다. 팀의 가장 부족한 부분을 외부 선수 영입으로 순식간에 채웠다. 만만치 않은 출혈도 있었지만, 트레이드 한 방으로 전력을 끌어올려 단기전에서 큰 효과를 봤다.
2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WS, MVP는 조지 스프링어다. '숨은 MVP'는 저스틴 벌렌더(34)다. 벌렌더는 WS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1패 평균자책점 3.75를 기록했다. 1패 상황에서 맞이한 2차전 선발투수로 나와 6이닝 2피안타 3실점 쾌투로 7-6 승리의 기틀을 마련했다. 패전투수가 됐지만 6차전에서도 6이닝 3피안타 2실점하며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했다. 득점 지원을 받았다면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가능한 성적. WS 이닝당출루허용률(WHIP)은 0.583로 '특급' 수준이었다.
이미 디비전시리즈(ALDS)에서 2승·평균자책점 3.12, 챔피언십시리즈(ALCS)에서 2승·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했던 벌렌더는 포스트시즌 6경기에서 4승1패 평균자책점 2.21로 에이스 역할을 해 줬다. 댈러스 카이클이 부진(WS 1패·평균자책점 5.23)한 상황에서 선발 로테이션이 흔들리지 않은 건 벌렌더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트레이드가 통했다.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은 벌렌더는 2005년 데뷔 이후에 줄곧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않았다. 디트로이트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선수였다. 그러나 지난 8월에 휴스턴은 유망주 3명을 내주고 벌렌더를 영입했다.
트레이드 매물로 소니 그레이(뉴욕 양키스)와 다르빗슈 유(LA 다저스) 등이 있었지만 휴스턴의 선택은 벌렌더였다. 지난해와 올 시즌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선정한 프리 시즌 유망주 랭킹 톱100에 이름을 올린 외야수 다즈 카메론과 투수 프랭클린 페레스를 내주는 출혈을 감수했다. 그리고 투자가 아깝지 않은 결과를 안았다. 벌렌더는 이적 뒤에 5경기 5승 평균자책점 1.06을 기록하며 팀의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이끌었다. 더 나아가 포스트시즌에서도 '우승청부사'로 마운드의 버팀목이 됐다.
KIA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30일에 두산을 꺾고 KS 우승을 차지한 KIA는 '이적생 듀오' 이명기(30)와 김민식(28)의 활약이 활력소가 됐다. 두 선수는 시즌 개막을 SK에서 맞이했지만 4월 7일에 단행된 4 대 4 트레이드로 나란히 KIA의 유니폼을 입었다. SK 외야수 노수광과 포수 이홍구 등을 내줬지만 이명기와 김민식으로 통합 우승의 밑그림을 그렸다.
반전의 연속이었다. 2014년부터 2년 타율 3할을 기록했던 이명기는 지난해 99경기 출전에 그쳤다. 공격 전 부분에서 큰 폭으로 기록이 하락하면서 팀 내에서 입지가 좁아졌다. 장타자가 많은 SK에선 더 이상의 기회를 잡기 힘들었다. 김민식도 비슷했다. SK에선 이재원의 백업으로 비중이 높지 않았다. 경기 후반에 대수비 출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KIA는 약점인 외야와 포수를 두 선수로 보완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이명기는 KIA 유니폼을 입은 뒤에 올 시즌 11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32로 반전을 만들어 냈다. 63타점은 커리어 신기록. 김민식은 KIA로 이적 뒤에 시즌 타율은 0.222에 불과했지만, 수비 비중이 높았다. 도루저지율이 37.8%. 강민호(롯데·30.4%)와 양의지(두산·32.1%) 등 국가대표 포수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았다. 양현종(20승6패)·헥터 노에시(20승5패)와 줄곧 호흡을 맞추면서 두 선수의 동반 20승을 견인했다.
KS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명기는 KS에서 22타수 8안타를 기록했다. 우승을 확정한 5차전에선 1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 1타점을 때려 냈다. 시리즈 내내 2번 타순에서 김주찬이 부침을 보였지만 부지런하게 출루해 주면서 만회했다. 김민식은 기대했던 '수비'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2차전을 제외한 1·3·4·5차전에서 모두 선발 마스크를 썼다. 스스로 "공격은 해 줄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수비에 집중하겠다"며 각오를 다졌고, 안정감 있는 블로킹과 투수 리드로 안방을 지켜 냈다.
트레이드는 위험부담이 크다. 팀을 떠난 선수가 비수를 꽂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력을 한순간에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휴스턴과 KIA가 이를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