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2018 평창겨울올림픽 최대 화두는 감동, 환희, 눈물이 아니었다. 파벌과 왕따 그리고 국가대표 자격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 경기에서 드러난 일명 '왕따 논란'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해당 선수들에 대한 비난이 거셌다. 그 다음 대한빙상경기연맹 개혁을 화두로 던졌다.
익숙한 장면이다. 4년 주기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언제나 4년 동안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올림픽이 열리는 그때에만 분노하며 변화를 외친다. 빙상연맹의 적폐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오는 현상이었음에도 빙상연맹을 향한 의심의 기간은 너무나 짧다. 올림픽이 끝나면 다시 사그라질 이슈다. 무관심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다시 폭발한다. 이런 과정의 연속이다.
이는 올림픽에서만 국한된 장면이 아니다. 월드컵도 그렇다. 아니 월드컵은 올림픽보다 더욱 파급력이 크다.
4년 마다 한국 축구는 요동친다. 한국 프로축구 K리그 등 평소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체력을 비축시킨 뒤 월드컵 때 한 번에 폭발시킨다. 영광으로 환한 빛을 내던가. 아니면 한국 축구 최대 위기로 몰리던가. 둘 중 하나다. 후자의 경우, 언제나 대한축구협회(협회)와 대표팀을 향한 개혁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잠시 뿐, 변하는 건 없었다.
올해가 4년 주기가 돌아오는 해다. 2018 러시아월드컵이 열린다.
대회가 끝난 뒤 원인을 찾는 것, 이제는 늦다. 똑같은 과정의 반복일 뿐이다. 이번에는 대회 전 미리 문제점을 적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국가대표의 진정한 자격을 묻고 이를 갖추기 위한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 러시아월드컵 성공을 위한 또 장기적인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발점이 돼야 한다. 진정한 변화가 필요하다.
◇국가대표 선발 기준은 대표팀 감독
가장 원론적인 질문. 월드컵 대표팀을 구성하는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기준'이 있는가.
없다. 선수 선발 권한은 대표팀 감독의 고유 권한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감독들의 권한을 보장해 준다. 따라서 신태용 감독의 철학과 방향성이 곧 지금 국가대표 선발 기준인 셈이다.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사실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선수 선발 전권을 준 것도 오래된 일은 아니다. 협회 윗선의 개입과 압력 등 월권행위가 감독을 흔들었을 때가 있었다. 학연, 지연 등에 얽히고,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특정 에이전트 소속 선수를 선발하는 등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 태극마크의 품격은 떨어졌고, 대표팀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게 돼 있다.
2002년 변화가 일어났다. 한일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전권을 가지면서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선발을 시도했고, 4강 신화라는 영광이 찾아왔다. 축구팬들은 어떤 세력과도 얽히지 않은 외국인 감독이기에 공정한 선수 선발이 가능했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협회 임원의 아들이 월드컵대표팀에 발탁돼 경기를 뛰어 많은 의구심을 받은 바 있다. 또 조광래 감독 시절 기술위원장이 선수 선발에 개입하며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감독에게 전권을 주는 문화는 자리를 잡아가게 됐다.
◇감독 전권의 부작용
어떤 조직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은 탈이 나게 마련이다.
감독에게 전권을 주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선발 기준과 철학 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흔들렸다. 해외파 선수들은 소속팀 경기에 뛰나, 못 뛰나 관행처럼 선발했다. 해외파 앞에서 공정함은 지웠다. 해외파와 국내파 파벌 논란도 결국 감독이 만든 것이다.
이런 부작용이 한꺼번에 터진 대회가 바로 '2014 브라질월드컵'이었다.
홍명보 감독에게 선수 선발 전권이 주어졌고, 이는 '엔트으리'로 귀결됐다. 여러 선수 중 핵심은 박주영이었다. 소속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박주영을 향한 자격 논란이 일었다. 홍 감독은 '황제 훈련'을 시키며 돌파구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1무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홍 감독이 의구심으로 가득 찼던 박주영을 브라질로 데리고 가려고 할 때 협회가 한 일은 '방관'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다. 대표팀 엔트리를 발표할 때마다 논란이 터졌다. 대표팀에 어울리지 않은 선수들이라 평가 받는 이들이 태극마크를 달아도 기술위원회는 침묵했다. 결국 슈틸리케호도 실패로 끝났다. 김봉길 U-23 대표팀 감독의 실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
◇견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독의 독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는 '견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위원회가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선수 선발 권한은 감독에게 남아있어야 한다. 기술위가 간섭과 개입, 압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기술위는 감독이 오판을 내리지 않도록 견제와 협력 기능에 주력해야 한다. 어떤 세계적 명장이라도 오판할 수 있다. 옆에서 흔들리는 감독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다. 신 감독과 기술위는 머리를 모아 이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
신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뒤 많은 축구팬들이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 특정 선수들이 있다. 장현수(FC 도쿄)와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이 대표적 선수다.
신 감독도 소통해야 한다. 귀를 열고 왜 그런 목소리를 내는지 들어봐야 한다. 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니다. 팬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아무리 감독이 원하는 선수라 해서 무조건인 포용과 옹호는 팬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또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국민들의 하나 된 응원은 없다. 국민의 마음이 분열된 대표팀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신 감독과 기술위는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팬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무조건 끌어안는다고 해결되는 일은 절대 아니다. 4년 전 홍 감독의 '엔트의리' 전철을 다시 밟는다면 한국 축구는 또 다시 최대 위기로 몰릴 수밖에 없다.
협회는 지금까지 이런 시스템이 있었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결과와 과정이 말해주고 있다. 시스템이 있었다면 허울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한 축구인은 "감독이 전권을 행사하는 것은 양면성이 있다. 주변을 보지 않고 독불장군식의 선수 선발로는 절대 월드컵에서 성공할 수 없다. 브라질에서 그 교훈을 얻었다"며 "소통이 중요하다. 감독이 전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문제점이 있으면 기술위가 적극적으로 조언해주는 견제 시스템이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임의 관점에서도 '견제 시스템'은 필요하다.
시스템이 정착돼야 함께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견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 협력하지 못한 책임이 뒤를 따른다. 지금까지 월드컵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감독만 졌다. 기술위는 권한만 누리고 책임은 회피했다. 이런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영광은 같이 누리고,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책임이 없는 권한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