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피가로 등 프랑스 매체들은 12일(현지시간) 지방시의 동거인인 필리프 브네가 "지방시가 지난 파리 근교의 자택에서 9일 잠을 자던 중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지방시는 1950~1960년대를 풍미한 디자이너였다. 특유의 여성스럽고 간결하며 절제된 세련미가 있는 디자인의 드레스를 디자인하며 이름을 날렸다. '세기의 연인'으로 불린 오드리 헵번과의 오랜 인연은 지방시를 세계적인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놨다.
헵번은 그의 대표작인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3년작 '사브리나'에서 지방시의 '리틀 블랙 드레스(몸에 딱 맞는 검정색 드레스)'를 입고 출연했다. 지방시는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패션업계 스타로 등극했다. 이후 지방시는 40여년 간 헵번의 평상복과 영화 의상 등 거의 모든 옷을 디자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헵번의 우아한 이미지는, 그가 출연한 거의 모든 영화에서 옷을 만들어준 지방시의 공에 기댄 것이다. 특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헵번이 입은 지방시 드레스는 20세기 최고의 영화 속 패션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평했다.
미국 상류층 여성들도 지방시의 옷에 열광했다. 존 F.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제인 폰다 등 여성 명사들이 지방시가 디자인한 제품들을 애용했다. 이른바 '재키스타일' 역시 지방시의 손으로 완성됐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할리우드 배우 출신의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도 지방시의 옷을 선호했다.
1927년 프랑스 보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의 순수미술학교에서 수학한 뒤 패션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1951년 자신의 패션하우스를 오픈한 뒤 이듬해 프랑스 일류 모델이었던 베티나 그라지아니를 기용해 첫 번째 컬렉션을 개최했다.
유족이자 동거인인 브네는 "지방시의 죽음을 알리게 된 일은 큰 슬픔이다. 조카 등 가족들과 함께 슬퍼하고 있다"고 심경을 표했다. 지방시 패션 하우스는 "패션에 혁명을 일으킨 지방시는 반세기 넘게 파리의 엘레강스함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며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