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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의 갓모닝] 708. 선악의 판단 기준
선과 악에 대한 인간과 신의 판단 기준은 다르다. 옛날에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있었다.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않으면서 매일 술을 마셨고 도박 중독에 빠져 전 재산을 날리고 말았다. 또 한 사람은 그와 정반대되는 삶을 살았다. 명의로 소문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
두 사람은 죽어서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갔다. 당연히 음주 도박꾼은 지옥으로, 명의는 천당으로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염라대왕의 판결은 뜻밖이었다. 도박꾼에게는 “너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네가 사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비웃으며 스트레스를 풀었으니 천당으로 가도록 해라.”
명의에게는 “너는 당장 지옥에 떨어져라. 너 때문에 우리 저승사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죽어야 하는 사람들을 살려 놓는 바람에 공무 집행을 방해했으니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명의는 황당해했다. 사람의 목숨을 구했다는 죄로 저승에 가야 하다니. 이 이야기는 오래된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인간과 신의 판단 기준은 180도 다르다는 말이다.
오래전 전라도 모처에서 여름 만행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고원지대에 위치한 한 여인숙에 머무는데, 여름 모기가 극성이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밖으로 나와 마당에 앉아 있으니 여인숙 주인아주머니께서 모기향을 피워 주면서 말했다. “하늘에 천도가 있다는 말은 다 거짓말입니다.”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뜻밖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주인아주머니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살아 있는 보살로 소문났었다. 인심이 후해서 동네 사람들과 항상 음식을 나눠 먹고 대접을 잘해 줬다고 한다. 일자리가 없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감을 주고 품삯도 후하게 쳐줬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벼락을 맞아 돌아가신 것이다.
주인아주머니는 어머니의 처참한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살아 있는 보살이 벼락을 맞아 죽다니 말이 됩니까? 나는 그 이후로 종교를 믿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천도 따위는 없습니다.” 당시 막 영안을 뜬 나는 의아했다. 살아 있는 보살이 벼락을 맞아 죽다니, 하늘에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영안으로 주인아주머니의 어머니를 살피자 끔찍한 악행이 드러났다. “죄송하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전 해, 사장님께서 열 몇 살일 때 어머니의 장독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네? 장독대요?” 주인아주머니는 그 날 있었던 일을 알지 못했다.
구렁이는 껍질을 벗으려면 염분이 필요하다. 큰 구렁이가 공기를 쐬기 위해 뚜껑을 열어 놓은 간장독을 발견하고 간장을 먹으려다가 그만 간장독에 빠져 죽고 말았다. 주인아주머니의 어머니는 구렁이가 빠져 죽은 간장이 아까워 구렁이만 건져 낸 채 일꾼들의 임금으로 곁간장 한 되씩 주던 것을 두 되씩 나눠 주었다. 일군들은 임금을 두 배로 받자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하늘은 주인아주머니 어머니의 죄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벼락을 맞게 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아주머니는 내 앞에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이 세상에 하늘이 모르는 일은 없습니다.” 신은 공평하다. 돈이 있건 없건, 권력이 있건 없건, 사람은 모두 똑같이 죽는다. 이번 백일기도에서 주역의 64괘를 공부했던 마음도 그랬다. 이제는 어떻게 사냐보다 가장 인간답게 잘 죽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할 때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