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BO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차례로 데일리 MVP에 오른 선수들이다. 양 팀이 연승이나 연패 없이 1승과 1패씩을 주고받으면서 MVP의 소속팀 역시 매 경기 바뀌었다.
2006년 포스트시즌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데일리 MVP는 말 그대로 그날 팀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활약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한 경기에서 홈런 3개를 쳐도 팀이 지면 받을 수 없다. 출입기자단 투표로 뽑는 시리즈 MVP와 달리 KBO가 직접 선정한다.
포스트시즌 데일리 MVP는 '임팩트' 싸움이어서 주로 타자들에게 트로피가 돌아간다. 결정적인 홈런을 때려 낸 선수라면 수상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다섯 명의 데일리 MVP 가운데 네 명이 타자였고, 그 가운데 세 명이 홈런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포문을 연 선수는 1차전 MVP가 된 SK 베테랑 타자 박정권(37)이다. 2-3으로 밀리던 6회초 1사 1루서 상대 선발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역전 결승 2점홈런을 터뜨렸다. 1회초 한동민의 선제 2점홈런으로 앞서가던 SK가 5회말 역전을 허용한 직후였다. 두산 쪽으로 넘어갈 뻔했던 흐름을 다시 SK 쪽으로 끌고 왔다. 그렇게 1차전에서 MVP가 됐다.
더 재미있는 것은 SK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던 2010년에도 박정권이 1차전에서 결승홈런을 때려 냈다는 점이다. 그때도 데일리 MVP였고, 더 나아가 시리즈 MVP에까지 등극했다. 올해 역시 플레이오프 1차전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모두 결승포의 주인공이 됐다. 그와 가을을 연결하는 수많은 별명에 '1차전의 사나이'가 추가된 이유다.
3차전에선 SK 외국인 타자 로맥이 홈런 두 방을 날렸다. 1회말 1사 1·2루서 두산 선발 이용찬의 높은 직구를 잡아당겨 좌중간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선제 3점포를 쏘아 올렸다. 비거리 130m짜리 대형 홈런이었다.
4-2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던 8회말에는 선두 타자로 나서 두산 불펜 박치국의 초구를 때려 내 한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SK의 승리를 확정한 한 방이었다. 3타수 2안타(2홈런) 1볼넷 4타점. 로맥은 역대 12번째로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두 개를 때려 낸 타자가 됐다. '로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4차전에선 반대로 '장타 욕심을 버린' 두산 정수빈이 깜짝 히어로가 됐다. 정수빈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배트를 극단적으로 짧게 잡고 타석에 섰다. 자신은 홈런보다 정확한 타격과 빠른 발로 팀에 공헌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바로 그 짧게 쥔 배트로 가장 극적인 한 방을 터뜨렸다.
두산이 0-1로 뒤진 8회초 1사 1루서 SK 외국인 불펜 앙헬 산체스의 시속 153㎞ 강속구를 받아 쳐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역전 결승 2점 아치를 그렸다. 2015 한국시리즈에서 6할에 육박하는 타율(0.571)로 MVP에 올랐던 그가 다시 한 번 '가을 사나이'의 위용을 과시했다. 두산으로선 지난 8월 정수빈이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것이 다행일 따름이다.
홈런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타점을 올린 SK 김성현은 5차전의 데일리 MVP가 됐다. 0-1로 뒤진 7회말 1사 2루서 김성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두산 외야진은 전진수비를 했다. 타석 전까지 한국시리즈 13타수 1안타를 기록하던 김성현의 타격감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김성현은 반전 드라마를 썼다. 호투하던 두산 선발 후랭코프를 상대로 좌중간을 깊숙하게 가르는 동점 적시 2루타를 작렬했다. 그 경기에서 후랭코프가 허용한 첫 장타였다.
당황한 두산 좌익수 정진호는 2루로 정확한 송구를 하지 못했고, 김성현은 그 틈을 타 3루에 안착했다. 이어 김강민의 좌익수 희생 플라이로 역전 결승 득점까지 올리며 환호했다. SK가 3-1로 더 달아난 8회말 2사 만루서는 밀어내기 볼넷까지 골라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플레이오프 때의 손가락 욕설 논란과 잦은 실책으로 고개를 숙였던 김성현이 비로소 활짝 웃는 순간이었다.
2차전에서는 이번 시리즈에서 유일한 '투수 데일리 MVP'가 나왔다. 정규 시즌 18승을 올려 다승왕에 오른 두산 외국인 투수 후랭코프다. KBO 리그 데뷔 첫 한국시리즈 등판에서 6⅔이닝을 5피안타 3실점(1자책)으로 막았다. 투구 수는 117개. 정규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투구 수인 112개보다 더 많이 던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이제 시선은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6차전으로 쏠린다. '미치는 선수'가 나와야 이긴다는 가을 야구의 공식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유효하다. 3승을 먼저 거둔 SK가 6차전에서 승리한다면 두 명의 MVP가 탄생한다. 데일리 MVP와 한국시리즈 MVP다. 반대로 벼랑 끝에 몰린 두산은 반드시 6차전에서 데일리 MVP를 배출해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과연 어느 팀, 어느 선수가 6차전이 끝난 뒤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