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은 이제 주요 평가 항목이 아니다. 좋은 외국인 타자를 영입하기 위해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올해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 A에선 홈런이 '역대급'으로 급증했다. 지난 6일(한국시간)까지 트리플 A 퍼시픽코스트리그(PCL·Pacific Coast League) 팀 홈런 1위 엘패소(샌디에이고 산하)의 기록은 189개(88경기)다. 경기당 홈런이 무려 2.15개. 이 부문 지난해 공동 1위에 오른 솔트레이크(LA 에인절스 산하·139경기)와 라스베이거스(오클랜드 산하·140경기)의 173홈런을 일찌감치 앞섰다. 상대적으로 홈런이 적게 나오는 인터내셔널리그(IL·International League) 팀 홈런 1위 콜럼버스(클리블랜드 산하·86경기 147홈런)도 지난해 1위 리하이 벨리(필라델피아 산하·140경기 145홈런)의 성적을 뛰어넘은 상황이다.
KBO 리그 스카우트에도 그 여파가 끼친다. 국내 A구단 스카우트는 "솔직히 홈런은 보지 않는다. 타율이나 발사각을 좀 더 들여다보지 홈런을 많이 쳤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내리진 않는다"며 "홈런은 (평가 항목에서) 지웠다"고 했다. 그동안 외인 타자 평가 항목 중 상위에 홈런이 있었다. 대부분 클린업트리오에 들어갈 중심타자를 찾기 때문에 홈런은 타자 능력을 볼 수 있는 절대 지표 중 하나였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크게 의미를 두기 힘든 자료로 전락했다.
지난 4월 베이스볼아메리카(BA)는 "2018년 4월 트리플 A 타자들은 47타석마다 홈런을 터트렸다. 그러나 올해 4월에는 32타석에 하나"라고 밝혔다. 탬파베이 내야수 네이트 로는 "누군가 PCL에서 한 시즌을 뛴다면 홈런 55개를 칠 것"이라고 말했다. 농담이 아니다. PCL 개인 홈런 1위 케빈 크론(리노·애리조나 산하)은 55경기에서 홈런 29개(206타수)를 때려 냈다. 장타율이 무려 0.840. 2014년 마이너리그에 데뷔해 한 시즌 최다 홈런이 27개(상위 싱글 A)였지만 일찌감치 개인 첫 30홈런 초읽기에 들어갔다. 루이빌(신시내티 산하)에서 뛰던 조시 반미터는 첫 30경기에서 무려 13홈런을 기록해 70홈런 페이스를 자랑했다. 대부분의 타자가 '홈런 인플레이션' 속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공인구 교체가 '타고투저'로 연결됐다. 올 시즌을 앞두고 마이너리그에선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공으로 공인구를 교체했다.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코스타리카, 마이너리그 공인구는 중국에서 생산됐는데 '통일성'을 위해 같은 공을 이용한다.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최근 빅리그 내 홈런이 급증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이 기조가 마이너리그의 '타고투저' 분위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국내 B구단 스카우트는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홈런이 쏟아진다"고 했다.
타자들 성적에도 어느 정도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지난달 11일 대체 외인으로 롯데와 계약한 제이콥 윌슨의 시즌 트리플 A 홈런은 15개. 55경기만 뛰고 개인 한 시즌 마이너리그 최다 홈런인 18개에 육박했다. 시즌 장타율이 0.609로 마이너리그 통산 장타율(0.435)과 비교하면 무려 1할7푼 이상 차이 났다. 최근 NC의 대체 외인으로 낙점된 제이크 스몰린스키의 시즌 트리플 A 홈런은 12개(장타율 0.504)로 개인 통산 최다(종전 10개)였다. 뚜껑은 열어 봐야 하지만 2013년 트리플 A에서 보여 준 성적(장타율 0.401)이 진짜 모습일 가능성도 있다. 국내 C구단 스카우트는 "마이너리그 홈런 10개는 이제 너무 쉬운 기록"이라고 했다.
타자를 평가하는 항목은 다양하다. 세이버메트릭스를 바탕으로 한 세부화된 지표가 주목받으면서 클래식한 기록에는 큰 가치를 두기 힘들어졌다. 발사각(Launch Angle)과 타구 속도(Exit Velocity) 그리고 배럴(Barrel) 타구 등에 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희소성이 떨어진 '홈런'은 이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올 시즌에는 그렇다. 외국인 시장에서 '홈런'에 주목했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