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31·세인트루이스)이 재학하던 시절, 그의 모교인 안산공고는 이른바 '광현공고'로 통했다.
투타에서 모두 전국 최강 실력을 자랑하는 데다 키가 훤칠하고 웃는 모습까지 멋진 꽃미남 고교생 투수. 야구 만화 주인공으로 등장할 듯한 '본 투 비 스타'였다. 2005년에는 모두 고교 3학년생들로 이뤄진 아시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유일한 2학년 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한 경기에 탈삼진 16개를 잡아낸 적도 있다. 2005년 6월 30일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안산공고가 포철공고를 상대로 1-0 완봉승을 거두던 날이다. 2학년 에이스 김광현은 경기 개시 후 다섯 타자 연속 탈삼진을 시작으로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9이닝 동안 아웃카운트 16개를 삼진으로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심지어 김광현은 이날 타석에서도 2안타 1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 안산공고가 유일하게 뽑은 1점이 바로 김광현이 9회 선두타자 안타를 치고 나가 2루 도루에 성공한 뒤 1사 후 희생플라이 때 홈을 밟아 만들어낸 점수였다. 그야말로 원맨쇼. 야구계가 '김광현'이라는 이름으로 술렁거리기 시작한 시기다.
그때부터 김광현은 막연하게 메이저리거를 꿈꿨다. 당시 인터뷰에서 "최고의 투수들이 뛰고 있는 '꿈의 무대'에 언젠가는 도전하고 싶다"고 했고,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에서 뛰어보고 싶다. 랜디 존슨의 투구를 보고 있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했다. 한국 야구의 미래로 성장할, 유망한 왼손 투수의 부푼 꿈. 그 희망이 결국 프로 입단 13년 만에 극적으로 이뤄졌다. 이제 김광현은 당분간 KBO 리그의 SK가 아닌, 메이저리그의 세인트루이스 소속 투수다.
고교 1순위 투수 김광현은 자연스럽게 연고 지역 구단 SK의 1차지명을 받아 2007년 프로에 발을 내디뎠다. 다만 한 살 선배이자 늘 비교의 대상이던 류현진(당시 한화)과 달리 데뷔 첫 정규시즌에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주위의 너무 큰 기대와 관심은 오히려 앳된 고졸 신인에게 독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확실히 김광현은 조금 더 극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에이스의 태동을 알렸다. 바로 그 해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깜짝 선발 등판해 7⅓이닝 9탈삼진 무실점으로 완벽한 피칭을 했다. SK는 그 승리를 발판 삼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고, 김광현은 입단 2년째인 이듬해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 후 줄곧 KBO 리그 간판 투수 가운데 한 명으로 군림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새로운 '일본 킬러'로 자리매김했다. 또 류현진, 윤석민(전 KIA)과 함께 '빅 3' 트로이카로 불리며 모든 구단이 두려워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2010년은 김광현이 역대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2011년부터 3년간 어깨 통증으로 예년만 못한 성적을 내며 고전한 게 유일한 흠이었다.
첫 메이저리그 진출 시도가 불발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SK는 2014시즌이 끝난 뒤,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대대적으로 선언했다. 이미 류현진이 2년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보여준 뒤였고, 윤석민도 미국으로 떠나 볼티모어에 몸 담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당시 메이저리그 포스팅은 최고 응찰액을 적어낸 구단이 독점 교섭권을 가져가는 시스템이었는데, 샌디에이고가 턱없이 기대에 못 미치는 200만 달러를 적어내 실망을 안겼다. SK가 고민 끝에 그 금액을 수용하기로 했지만, 결국 연봉 협상 과정에서 김광현은 SK에 남는 쪽을 택했다. 3년간 계속됐던 어깨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결국 김광현의 날개를 꺾었다.
이후에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6시즌 막바지부터 계속된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시즌 종료 후 정밀 검진을 받았고, 끝내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김광현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뒤 2017시즌을 통째로 쉬면서 치료와 재활에 매진했다. 그 사이 머리를 커트하지 않고 어깨까지 길렀다가 2018년 복귀 등판을 마친 뒤 머리카락을 잘라내 소아암 환자에 기부하는 선행 이벤트를 펼쳐 박수를 받기도 했다. SK는 2018년 김광현의 투구 이닝과 투구 수를 조절하면서 에이스의 팔을 보호하는 데 힘썼고, 완벽하게 부활한 김광현은 올해 2010년에 이은 두 번째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내면서 다시 에이스로 날아 올랐다.
그렇게 김광현에게는 꿈을 펼칠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어느덧 30대 초반에 접어든 김광현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각오로 구단에 "더 늦기 전에 해외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다. SK 역시 10년 넘게 팀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광현의 공을 높이 사 포스팅을 허락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포스팅에 나온 김광현에게는 이전과 달리 수많은 구단의 관심이 쏟아졌다. 지난 2년간 보여준 김광현의 위력과 가능성에 여러 구단이 관심을 표현했다. 그 영입전의 승자는 물밑에서 조용히, 그러나 가장 빠르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세인트루이스였다.
김광현은 설레는 마음으로 지난 16일 조용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일사천리로 메디컬 테스트와 협상을 마친 뒤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한국인 투수 오승환이 한 차례 거쳐갔던 팀에서 까까머리 고교생 시절부터 품어 온 소망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지난 13년간 KBO 리그에서 남긴 수많은 족적을 뒤로 하고 김광현은 이제 새로운 무대로 향한다. 빅리그에서 크게 성공한 류현진을 '롤 모델'로 삼아 더 큰 무대에서의 성공을 꿈꾼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이룬 최고 투수의 새로운 도전에 수많은 팬의 격려와 박수가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