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 타자' 강백호. 사령탑이 준비한 변화가 안착하고, 머릿속에 그린 시나리오가 구현되면 볼 수 있다. 최상의 화력 구축이 가능하다.
부임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이강철(54) KT 감독은 미국 애리조나에서 소화한 스프링캠프 초반부터 타순 변화를 추진했다. 9번 타자던 주전 유격수 심우준(25)을 리드오프로 낙점했다. 팀 고참급 선수들도 지지했다. 전임 리드오프 김민혁(25)이 2번 타자로 나서면 기동력과 작전 수행력이 모두 좋아질 수 있다.
3번 타자는 해결과 연결 고리 역할을 모두 해내야 한다. 이 감독은 지난 시즌에 3번 타자로 나서던 강백호(21)에게 공개적으로 동기 부여를 했다. "100타점 이상 해주길 바란다"며 말이다. 선수도 "빠른 선배들이 주자로 있으면 부담을 덜고 타격에 임할 수 있다. 100타점을 꼭 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더 좋은 공격력을 구축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강철 감독이 다가올 시즌 키플레이어로 꼽은 황재균(33)이 3번에 포진되는 것이다. 이 감독은 2019시즌에 타율 0.283·20홈런·67타점을 기록한 그를 향해 "거의 커리어 로우(Low) 아니었나"라며 더 높은 팀 기여도를 보여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선수로 여겼다.
황재균도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감독님께서 내게 기대가 있기 때문에 더 높은 지표를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중심 타선, 3번 타자로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나도 100타점 이상 기록하고 싶다"는 포부도 전했다.
황재균은 KBO 리그에서 뛴 11시즌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해냈다. 겨우내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근력과 순발력이 향상됐다. 그가 3번에 포진하면 1-3번 타자가 모두 기동력을 갖춘다. 상대 배터리와 야수진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 펀치력도 있기 때문에 득점력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3번에 적임자가 있다면, 강백호의 4번 배치도 앞당겨질 수 있다. KT뿐 아니라 국가대표팀의 차기 4번 타자로 기대받는 선수다. 특유의 공격적인 성향과 장타력을 감안하면 3번보다 4번에 어울린다는 평가.
마침 적기다. 강백호는 현재 1루수 전향을 준비 중이다. 수비력도 준수하다. 선수는 타순이나 수비 위치가 자신의 타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리그 정상급 타자도 4번만 들어가면 부진한 사례가 있을 만큼 적응이 필요한 자리다. 상대적으로 수비 부담이 덜한 포지션에 나서면 타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강백호가 4번 타자로 나서고, 기존 4·5번 타자 유한준(39)과 멜 로하스 주니어(30)가 후속 공격을 지원하면 KT의 득점 응집력은 향상된다. 이어 포진되는 박경수와 장성우도 장타력이 있다.
마지막 퍼즐은 9번 타자다. 원래 오태곤(29), 문상철(29) 등 주전 1루수를 두고 경합하던 선수의 자리였다. 이강철 감독도 7, 8번 타자가 발이 느리기 때문에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포진시키려고 했다.
강백호의 1루 전향이 성사되면 이 자리는 스프링캠프에서 두각을 드러낸 배정대(25), 지난 시즌 강백호의 부상 공백을 메운 조용호(31)가 외야 한 자리 겸 9번 타순을 채울 전망이다. 타구 속도가 크게 향상된 배정대는 2루타 생산이 기대되고, 조용호는 테이블세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역할을 잘해낼 수 있는 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