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현역 시절 한국 여자농구 최고 센터였다. 골 밑에서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상대는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는 한국 농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동양인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을 깨고, 1984년 LA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들은 한국 남자농구의 차세대 에이스다. 미국 프로농구(NBA) 진출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어머니는 1980년대 한국 여자농구 부동의 주전 센터 성정아(55) 수원 영생고 체육 교사다. 아들은 미국 데이비드슨대 1학년 이현중(20)이다. 두 사람을 16일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현중에게 “어머니가 스타였던 게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부담도 되지만, 그보다는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라서 더 좋다”고 대답했다. 그 말이 쑥스러운 듯 성정아는 “현중이는 내가 뛰는 모습을 거의 못 봤을 텐데”라며 웃었다. 성정아는 삼천포여종고 1학년이던 1982년, 만 16세에 국가대표로 뽑혔다. 올림픽 은메달과 아시안게임 메달 3개(1990년 금, 82·86년 은)를 따냈다. 실업무대도 평정했다.
장신(2m1㎝) 슈팅가드 이현중은 농구인 유전자를 받았다. 어머니(1m 82㎝)뿐 아니라, 아버지(이윤환 삼일상고 농구부 감독·54·1m 92㎝)도 농구인이다. 누나(이리나·24)도 16세 이하(U-16) 국가대표를 지냈다.
이현중은 국제대회에서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고교 2학년 때인 2017년 U-17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을 8강까지 이끌었다. 대회 후 호주 캔버라의 NBA 글로벌 아카데미로부터 입학 권유를 받았다. 삼일상고를 전국대회 5관왕으로 이끈 뒤, 호주로 떠났다. 그때부터 NBA 진출을 꿈꿨다. 롤모델도 생겼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가드 클레이 탐슨(30)이다. 정상급 슈터이면서 수비 등 팀플레이도 잘한다. 이현중은 “화려한 플레이를 좋아하지만, NBA에서 살아남으려면 탐슨처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중은 지난해 9월 데이비드슨대에 입학했다. NBA 슈퍼스타 스테판 커리(32·골든스테이트)의 모교다. 그에게 입학을 제안한 미국 대학은 40여 곳이었다. 그중 데이비드슨대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는 “밥 맥킬롭 데이비드슨대 감독님은 1989년부터 30년간 팀을 이끈 지도자다. 경기당 20분 출전을 보장했다. ‘재능을 살려 최고 슈터로 키우겠다’는 말에 끌렸다”고 말했다.
농구 ‘차세대 괴물’이 득실거리는 미 대학스포츠협회(NCAA) 리그에 이현중은 연착륙했다. 28경기에 출전해, 평균 20.9분을 뛰었고, 8.4득점, 3.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NCAA 디비전1(1부) 애틀랜틱10 콘퍼런스의 신인 베스트 5에도 뽑혔다. 농구 본토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주특기인 3점 슛 성공률은 37.7%다. 동료들은 슛이 정확한 그를 ‘저격수(sniper)’라고 불렀다.
이현중은 “미국 농구는 컴퓨터게임 난이도를 최상으로 설정하고 하는 기분이다. 처음엔 덩치가 월등하게 큰 선수와 맞서면 힘과 체력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하지만 경쟁하고 이겨내면서 농구 재미가 커졌다. 코로나 사태로 ‘3월의 광란’(NCAA 64강 토너먼트)에 도전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달 귀국했지만, 쉴 틈이 없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기말고사를 치렀다. 자가격리를 마친 뒤에는 매일 3시간씩 훈련한다.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한다. 식사도 NBA 선수 식단을 따라 먹는다. 그래서 전에는 먹지 않던 두부·아보카도·견과류·연어 등을 많이 먹는 편이다. 성정아는 “현중이는 고교 때도 매일 슛을 1000개씩 던졌다. 재능이 있어도 노력해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개인적으로는 ‘좀 느슨하게 지내도 될 텐데’ 싶은데…. 철저한 자기 관리를 보면 그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현중의 목표는 NBA 입성이다. 고교 선배이자, 한국 최초 NBA 선수인 하승진(35·2m 21㎝·은퇴)을 만나 경험도 전수받을 예정이다. 그는 “어머니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올림픽 메달을 현실로 만들었다. 나는 일단 꿈의 무대인 미국까지는 갔다. NBA를 누비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건 내 몫”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