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투수 중에서 다승과 평균자책점 1위는 1~3선발 타일러 윌슨과 케이시 켈리, 차우찬이 아니다. 선발 로테이션 진입조차 장담할 수 없었던 임찬규(28)가 주인공이다.
임찬규는 12일 현재 8승 4패 평균자책점 3.71을 기록하고 있다. 평균자책점 전체 7위. 국내 투수 가운데선 NC 구창모(1.55)에 이어 두 번째로 좋다. 다승 역시 전체 7위, 국내 2위에 해당한다.
임찬규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예약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채운 2018년(11승)에 이어 두 번째로 10승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3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한 시즌은 올해가 처음이다.
임찬규의 호투는 1~3선발의 부진 탓에 더 돋보인다. 윌슨(6승 6패, 평균자책점 3.86)과 켈리(5승 6패, 4.25), 차우찬(5승 5패, 5.34)은 예년보다 부진하다. 임찬규는 5선발로 번갈아 나서는 정찬헌(5승 2패, 3.67), 이민호(3승 2패, 2.47) 등과 함께 LG의 국선발진을 이끌고 있다. 지난겨울 류중일 LG 감독이 "4~5선발이 약하다"라며 고민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2017년부터 4선발로 활약한 임찬규는 올해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에서 부진했다. 투구 이닝보다 실점이 더 많았다. 류 감독은 "(임)찬규가 부진해 국내 선발진 구성을 고민해 보겠다. 다른 선수들도 준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개막 엔트리 합류가 불투명했던 임찬규는 개막 직전 선발 로테이션 잔류를 확정했다.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9이닝당 탈삼진이 8.68개(4위)에 이를 만큼 위력적이다.
휘문고를 졸업한 임찬규는 2011년(전체 2순위) 입단 당시 최고 150㎞의 빠른 공을 던졌다. 하지만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강속구를 잃었다. 스피드 회복을 위해 "145㎞만 던질 수 있으면 내 연봉을 모두 최일언 투수코치님께 드리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임찬규는 구속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12일 잠실 KIA전에서 그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142㎞였다. 이날 임찬규는 올 시즌 개인 최다 탈삼진(9개)을 뽑아냈다. 체인지업과 커브를 섞어 던져 KIA 타선을 봉쇄했다. 탈삼진 9개 가운데 헛스윙 삼진만 8차례였을 만큼 KIA 타자의 방망이는 허공을 가르기 일쑤였다. 5이닝 무피안타 4볼넷 무실점.
임찬규는 "탈삼진 욕심을 내는 바람에 4회 2사 후 밸런스가 무너져 연속 볼넷을 내줬다. 탈삼진보다 7이닝을 던지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임찬규는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았지만, 투구 수가 96개에 이르러 5이닝만 던졌다.
임찬규가 달라진 비결은 '피칭 터널'과 '릴리스 포인트'의 변화다. 타자가 스윙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구종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애쓴 것이다. 이를 위해 변화구 궤적이 변하기 시작하는 지점(터널 포인트)에 앞서 구종을 간파당하지 않도록 릴리스 포인트로 일정하게 유지했다.
임찬규는 데이터 분석에 열을 올려 '피칭 터널'을 완성했다. 그는 "과거에는 내 직구가 느려서 체인지업도 정타를 맞는다고 생각했다. 올해 직구와 체인지업의 피칭 터널을 잘 만든 것이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운드에 내려와서도 LG를 이끌고 있다. LG 선수들이 꼽는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가 임찬규다. 그는 "나는 조력자 역할을 할 뿐"이라고 했다. 마운드 위에서도, 또 벤치에 앉아서도 임찬규는 주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