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팀 기여도를 인정한다. 4번 타자 김재환(32)을 보는 김태형(53) 두산 감독의 시선이다.
김재환은 2020시즌 출전한 99경기에서 타율 0.273·20홈런·83타점을 기록했다. 9일 현재 홈런 공동 9위, 타점 5위에 올라 있다. 나쁜 기록은 아니다. 그러나 디펜딩챔피언 4번 타자에 걸맞은 숫자도 아니다. NC 양의지, LG 로베르토 라모스, KT 강백호 등 다른 상위권 팀 4번 타자보다 무게감이 떨어진다.
팀 내 타점 1위를 기록 중이지만, 득점권 타석(144번) 대비 타율(0.296)은 높은 편이 아니다. 삼진은 많다. 433타석에서 111개를 기록했다. 이 페이스면 종전 개인 한 시즌 최다 삼진(134개)을 넘어서게 된다.
일시적인 부진도 아니다. 3할대 월간 타율은 7월 한 번뿐이다. 5·6·8월은 모두 2할 5~7푼대. 7월은 강점인 장타력이 줄었다. 홈런은 3개, 장타율은 0.483에 그쳤다. 순위 경쟁이 본격화된 9월은 부진하다. 7경기 타율이 0.154에 불과하다.
2018시즌 리그 MVP인 김재환의 성적은 공인구 반발력이 크게 저하된 2019시즌엔 급락했다. 홈런은 29개 줄어든 15개에 그쳤고, 6할대던 장타율도 0.434로 떨어졌다. 공인구에 적응한 2020시즌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선수도 반등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시즌 내내 애매한 성적이다.
김태형 감독은 김재환을 꾸준히 4번 타자로 내세우고 있다. 보이지 않는 효과를 주목한다. 김 감독은 "감독이야 선수가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지금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김재환이 4번 타자로 나서는 것만으로 상대 배터리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김재환이 팔꿈치 부상 탓에 닷새 동안 이탈했다가 복귀한 8월 11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도 "김재환이 라인업 포진 여부는 (공격력) 차이가 매우 크다"고 했다. 김재환이 타석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해도, 앞뒤 타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3번 타자 오재일은 한창 타격감이 좋던 5월 중순 "2번 페르난데스, 4번 김재환이 워낙 타격 능력이 좋기 때문에 상대 배터리가 나와의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고 했다. 5번 타자 최주환도 "(김)재환이가 어떡하든 부담을 극복하고 팀에 기여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나도 더 집중하게 된다"고 했다. 김태형 감독도 2할대 타율보다 '우산' 효과를 믿는다.
김재환은 6일 키움전에서는 5점 차로 달아나는 3점 홈런, 9일 KT전에서는 1-2로 뒤진 상황에서 동점 발판을 만드는 2루타를 쳤다. 9월 성적은 안 좋지만, 중요한 순간 좋은 타격을 했다.
더 분전이 요구된다. 2020시즌이 클라이맥스에 왔다. 두산은 현재 선두 경쟁에서 밀려 있다. 베스트 라인업이 가동되고 있고, 야수진 컨디션도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중심 타선에서 위압감을 줘야 시너지가 커질 수 있다. 김재환이 두산의 재도약 키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