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김현수(33)는 지난해 타율 0.331을 기록했다. 그는 2020년 시즌 득점권 상황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무서운 타자였다. 경이로운 득점권 타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시즌이 막바지로 치달은 9월 말 득점권 타율 5할을 넘기기까지 했다. 결국 0.446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쉽게도 1982년 백인천이 작성한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고 득점권 타율은 0.476에 조금 못 미쳤다. 총 득점권 161타석에서 만루 홈런 5개를 포함해 58개의 안타를 쳤고, 장타율과 출루율은 0.677과 0.509로 아주 강했다. 득점권에서 강하다는 건 팀의 간판답게 해결사로 활약했음을 보여준다.
올 시즌에는 김현수가 찬스 상황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득점권 타율이 고작 0.217이다.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20년 득점권 타율 1위였던 그가 올해에는 52위로 위압감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 높은 득점권 타율 행진에 대해 "왜 그런지 모르겠다. 뭐에 씌웠나보다. 그냥 평소랑 똑같이 하고 있다"라고 놀라워했던 그였지만, 올 시즌 자신의 명성에 훨씬 못 미치는 '세부 성적표'다.
이런 부진은 '기본 성적표'에서도 마찬가지다. 올 시즌 타율은 0.292다. 이제 막 정규시즌 반환점을 돌았지만, 최근 들어 타율이 내리막이라 아쉬움을 자아낸다. 5월 타율 0.345를 기록한 뒤, 지난달 0.279로 떨어졌다. 최근 4경기에서 15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다. 이달 아직 안타를 기록하지 못한 상태다.
김현수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다. 개인 통산 타율은 0.320이다. 1982년 KBO리그 출범 후 통산 3000타석 이상 들어선 선수 가운데 타율 4위(5856타수 1876안타)에 해당한다. 규정타석을 기준으로 2012년 딱 한 차례 3할 타율 달성에 실패했고, 그 당시에도 0.291로 리그 평균(0.258)보다 훨씬 높았다. 대부분 선수가 목표로 삼는 3할 타율을 그는 어렵지 않게 달성했다. 이처럼 정교한 타격 기술을 덕분에 '타격 기계'라는 별명이 붙었다.
최근 부진은 부상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김현수는 6월 5일 광주 KIA전에서 개인 통산 350번째 2루타를 때린 뒤 오른 햄스트링 쪽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다음날 경기에 결장했다. 6월 8일 NC전부터 라인업에 복귀했지만, '외야수'가 아닌 '지명타자'로 고정됐다. 벌써 3번·지명타자로 나선 지 한 달이 됐다.
류지현 LG 감독은 "오랫동안 지켜본 김현수는 타격뿐 아니라 수비 의지도 강한 선수다. 이전부터 작은 부상에도 '수비를 봐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김현수의 입에서 '(외야수로 나갈) 준비가 됐다'는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라며 "올림픽 브레이크 이전까지 지명타자로만 나갈 수도 있다는 트레이닝 파트의 보고도 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개막 후 50경기에서 타율 0.322·8홈런·33타점을 기록했던 김현수는 햄스트링을 다친 후 타율 0.226·4홈런·14타점에 그치고 있다. 타격 기계도 부상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셈이다.
김현수는 완벽하지 않은 몸 상태로 계속 경기에 나서며 주장의 책임감을 보여준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김현수는 선수들을 다그치다가도, 팀 분위기가 떨어졌을 때 일부러 망가져 웃음을 주기도 한다.
최근 퇴출이 확정된 외국인 타자 로베르토 라모스가 내야 땅볼로 아웃된 후 전력으로 뛰지 않자, 김현수가 직접 다가가 "지명타자로 나섰으면 아웃 판정이 날 때까지 열심히 뛰라"고 질책한 적도 있다. 내야 땅볼에도 전력 질주하는 김현수는 "우리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뛰지만, 내가 그렇게 열심히 뛰면 (팀 동료들이) 따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팀 승리를 위해 상대 시프트 때 간판타자의 자존심도 버리고 기습 번트를 시도한다. 웬만한 큰 부상이 아니면 참고 뛴다.
하지만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은 절반 이상 뚝 떨어졌고, 부상 이후엔 더욱 부진하다.
쉬지 않고 정확히 움직여온 '타격 기계'의 정상 작동을 LG도, 대표팀도 간절히 바란다. 김현수는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