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투수와 포수가 홈런왕 경쟁을 펼치는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31일(한국시간) 기준 MLB 아메리칸리그(AL) 홈런 1위는 ‘투수’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가 차지하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타석에 들어설 필요도 없지만 한 시즌 내내 투타 겸업을 유지하면서 홈런 전체 1위(42홈런)를 달리는 중이다. 시즌 내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38홈런)와 경쟁을 벌였지만, 여름 이후 차이가 벌어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경쟁자가 새로 등장했다. 역시 타격에 집중하기 힘든 ‘포수’ 살바도르 페레스(31·캔자스시티)다. 전반기 89경기에서 21홈런을 기록했던 페레스는 후반기 40경기에서 17홈런으로 페이스를 두 배 가까이 끌어 올려 공동 2위에 올라섰다. AL 역대 포수 신기록(종전 1985년 칼튼 피스크·37홈런)을 경신했고 포수 역대 최다 홈런(1970년 조니 벤치·45홈런) 경신도 눈앞에 뒀다.
후반기 페이스에서 차이가 크다. 오타니가 후반기 경기당 홈런 0.214개(41경기 9개)에 불과하지만 페레스는 같은 기간 경기당 홈런 0.425개를 쏘아 올렸다. 8월로 한정하면 홈런 차이가 4개와 12개로 세 배까지 벌어진다. 최근 페이스가 계속된다면 보름이 지나기 전에 홈런 순위가 뒤집힐 수 있다.
설령 홈런왕을 못 타더라도 오타니는 시즌 최우수 선수(MVP) 수상이 유력하다. 타격 페이스는 떨어졌지만 투구 페이스가 좋다. 전반기 13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3.49를 기록했는데 후반기 성적이 6경기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13 대폭 좋아졌다. 삼진이 줄었지만(9이닝당 탈삼진 전반기 11.7개, 후반기 9.5개) 대폭 개선된 제구력(9이닝당 볼넷 전반기 4.7개, 후반기 0.95개) 덕분이다.
이도류 활약 덕분에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미 MVP급 성적이 쌓였다. 8월 30일 기준 오타니가 기록 중인 bWAR(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은 7.8에 달한다. 현재 페이스라면 시즌 종료 시 bWAR 9.65를 기록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이를 넘긴 선수는 마이크 트라웃(2012년, 2016년·10.5) 브라이스 하퍼(2015년·9.7), 무키 베츠(2018년·10.7) 단 세 명에 불과하다. 오타니 역시 MVP 수상을 넘어 이들과 함께 역대급 MVP로 이름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