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는 2013년 KBO리그 정규시즌 최종전에서 맞붙었다. 최하위가 이미 확정된 한화와 달리 넥센에게는 중요한 게임이었다. 이기면 정규시즌 2위를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넥센의 선발 투수는 김영민(현 김세현) 선수였다. 경기 전 동료 선수들과 코치 등이 그에게 한마디씩 던졌다. “영민아, 편하게 던져. 부감 갖지 마.” 지난 밤에 잠도 잘 잤던 김영민은 편안한 마음으로 야구장에 나갔으나, 그들의 격려를 계속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경기의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주입되면서 김영민은 “오늘 편하게 하면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긴장감이 몰려왔다. 동료들의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좋지 않은 영향이 그에게 전해진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계의 역사를 바꾼 기념비적인 책이 있다. 티모시 골웨이가 1974년에 출판한 『테니스의 이너 게임(The Inner Game of Tennis)』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게임은 외면(outer)과 내면(inner)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에 존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우터 게임이다. 즉 상대방과 플레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아우터 게임에서만 이기기 위해 몰입해 왔다.
골웨이는 관심을 덜 받은 이너 게임에 주목했다. 이너 게임의 초점은 ‘선수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냐’다. 다시 말해 선수 자신의 잠재역량을 떨치는 데 방해로 작용하는 내적 요인을 억제하는 게 이너 게임의 목표다. 골웨이는 테니스를 가르치면서 발견한 이너 게임의 원리를 스키, 골프, 음악 연주와 비즈니스 등에도 적용해 효과를 보았다. 이너 게임은 운동선수와 자신의 분야에서 더 좋은 성과를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학생은 어느 날 테니스 코치한테 불만을 호소한다. “내 서브는 문제가 있어요.” 그러자 코치는 그의 동작을 지켜보고 자신이 알고 있는 올바른 모델과 학생의 그것을 비교한다. 차이가 발견되면 코치는 학생의 서브를 모델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지시를 내린다. 이러한 지시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해야 할 것과 해선 안 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코치는 학생의 서브를 보면서 “좋았어”나 “틀렸어”를 외친다. 학생은 옳은 동작을 하기 위해 들은 대로 열심히 노력한다. 코치는 다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외치며 판단을 내린다. 교습은 이렇게 계속 진행된다. ‘그른 동작에서 바른 동작’으로 변하게 하는 주체는 학생이 아니라 코치다. 이러한 평가적인 지도에 학생은 의문이나 저항감을 가질 때도 있다. 아울러 “지시받은 대로 잘할 수 있을까”하는 불안감이 생기기도 한다.
한편 학생의 머릿속에도 내면의 대화가 시작된다. “공을 적당한 높이와 올바른 방향으로 던져.” “최고점에서 타격을 해.” 서브를 하고 나면 평가가 이어진다. “이런 터무니없는 서브를 하다니.” 골웨이는 이런 내면의 대화에 주목했다. 그는 지시하고 평가하는 쪽을 ‘셀프1’, 이를 듣는 쪽을 ‘셀프2’라고 명명했다. 셀프1은 실제로 동작을 하는 셀프2를 믿지 않는다. 따라서 셀프2의 동작을 코치가 알려준 대로 일일이 통제한다. 그리고 이런 지나친 통제는 학생의 자신감을 약화하고 자연스러운 학습에 방해가 된다.
셀프2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잠재역량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모두 셀프2로 살았다. 아이가 걸음걸이를 익히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아이는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균형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걸음걸이를 배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난 할 수 있어” 혹은 “할 수 있을까?”라는 긍정 또는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 “나보다 늦게 태어난 옆집의 철수는 이미 잘 걷는데”라는 비교도 없다. 이렇듯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도 일어나지 않는다.
골웨이는 셀프1이 조용히 있고 셀프2가 집중한 상태에서 공을 칠 때 학생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셀프2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셀프1보다 훨씬 현명하다. 따라서 필사적인 노력보다는 체험을 통해서 익히는 자신의 내적역량을 신뢰할 때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인 변화가 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셀프1은 초보자뿐만이 아니라 경험이 많은 프로선수도 방해한다. 예를 들어 한 게임에서 어이없는 샷을 1~2회 날리자 테니스 선수는 자신을 책망한다. 이렇게 시작한 자신에 대한 비난은 쉽게 멈출 수 없고, 이로 인해 선수의 자신감은 더 떨어진다.
따라서 선수 머릿속에 있는 내면의 대화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고의 플레이를 한 선수에게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고 편안한 상태에서 경기에 몰입해 있었다.” 이렇듯 위대한 플레이를 한 선수의 머릿속에는 당시 어떠한 명령이나 평가도 없었다. 그저 플레이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무엇인가를 컨트롤하려는 생각이 없었을 때 가장 컨트롤이 잘 된다는 것이다.
야구의 예를 들면 위력적인 공을 가진 투수가 자신의 기량을 못 믿고,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다 위기를 맞고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낼 때 선수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았고 언제나 게임에 집중해 있었다. 우리는 타고난 능력을 방해하는 내부의 불필요한 대화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