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쿠바 선수들에게 의미가 특별하다. WBC는 올림픽 등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관하는 대회보다 참가 기준이 유연하다. 특정 국가의 유효한 여권을 지닌 국민, 해당 국가의 합법적인 영구 거주민, 부모 중 한쪽이 특정 국가의 국민이거나 해당 국가에서 태어난 것을 서류로 증명할 수 있는 선수면 충분하다.
그렇다해도 딱 한 나라, 쿠바만큼은 대표팀을 구성하는 게 쉽지 않았다. 오랜 기간 미국과 적국으로 갈등을 빚었고, 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그(MLB) 도전을 위해 망명을 한 탓이다. 양국의 외교 문제나 망명 선수를 대하는 쿠바 정부의 태도 때문에 지난 네 차례 WBC에는 빅리그에서 뛰는 쿠바 선수들이 출전하지 못했다. 2010년대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와 아롤디스 채프먼, 야시엘 푸이그, 호세 어브레유 등 쿠바 출신 빅리그 선수들이 대거 등장했으나 모두 MLB 진출 후 국가대표 유니폼은 입을 수 없었다.
이번 대회는 쿠바 망명 선수들도 대표팀 합류가 가능하다. 지난해 12월 쿠바야구협회(CBF)가 성명을 통해 "미국 측이 망명한 쿠바 야구 선수들의 WBC 출전을 허가했다. (CBF도) 조만간 관련 협정이 마무리되면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며 망명 선수들도 포함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허가는 나왔지만 모든 선수들이 대표팀에 오르진 못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인 요르단 알바레스나 어브레유는 이번 대표팀에 출전하지 않는다. 대신 MLB '쿠바계의 산실'로 꼽히는 화이트삭스의 얼굴 몬카다와 로버트가 나섰다. 화이트삭스는 지난해까지 뛰었던 어브레유를 비롯해 야스마니 그랜달, 로버트, 몬카다 등 주축 선수 다수가 쿠바계로 이뤄진 팀이다.
몬카다와 로버트는 2일(한국시간) MLB닷컴과의 인터뷰에서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쿠바 대표팀 발탁의 의의를 설명했다.
몬카다는 지난 2014년 쿠바 정부의 허락을 받고 과테말라로 이주해 영주권을 얻었다. 이후 미국 구단과 계약해 과거 문제가 된 망명 선수 신분은 아니다. 반면 로버트는 MLB 진출을 위해 2016년 11월 쿠바를 탈출했던 망명 선수다.
두 사람은 첫 빅리거 국가대표 선수이고, 로버트는 1959년 쿠바 공산 혁명 이후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망명 선수로 기록됐다. 두 사람은 오는 3일 쿠바가 속한 A조 라운드가 펼쳐질 대만으로 출국한다.
몬카다는 "여러 제한적인 규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쿠바 대표팀으로 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런 기회를 얻어 정말 기쁘다. MLB에서 뛰는 쿠바 선수들이 향후 국제대회에 자유롭게 출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로버트도 "어린 시절 국가대표팀이 탄 비행기를 보며 '언젠가 나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쿠바 대표팀의 일원이 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몬카다와 로버트는 15세 이하, 18세 이하 쿠바 대표팀에서 뛴 적이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열린 18세 이하 대표팀에서는 함께 호흡을 맞췄다. 로버트는 "7년 만에 다시 쿠바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다. 그 대회가 WBC여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기뻐했다.
몬카다도 "쿠바에 계신 부친이 오랫동안 '아들이 WBC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곧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을 한다"고 기대했다.
A조에 속한 쿠바는 오는 8일부터 12일까지 대만에서 네덜란드, 이탈리아, 파나마, 대만과 차례대로 만난다. A조 2위 안에 들면 한국이 속한 B조의 8강 진출팀과 만나게 된다. 쿠바가 조 1위, 한국이 조 2위를 하거나 한국이 조 1위, 쿠바가 조 2위를 한다면 4강 티켓을 놓고 맞대결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