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대표팀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B조 1라운드 첫 경기 호주전을 7-8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대표팀은 험난한 일정을 예고했다. 10일 숙적 일본전마저 패할 경우 조 2위까지 가능한 8강 진출이 좌절될 수 있다. 2013년과 2017년에 이어 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위기다.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는 7회 나온 강백호의 주루 플레이였다. 강백호는 4-5로 뒤진 7회 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대타로 출전,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때려냈다. 단숨에 득점권 찬스를 만드는 장타였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2루를 밟은 강백호가 세리머니를 하다가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진 것이다. 2루수 로비 글렌다이닝이 빈틈을 놓치지 않고 태그해 아웃 카운트를 챙겼다. 원심은 세이프였지만 호주에서 비디오 판독을 신청, 결과가 바뀌었다. 후속 양의지(NC 다이노스)의 안타가 나왔다는 걸 고려하면 더 뼈아팠다.
이날 대표팀의 패인은 강백호의 주루 플레이 하나가 아니었다. 타선은 5회 말 1사까지 '퍼펙트'로 호주 마운드에 끌려갔다. 특히 3회 첫 타석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7번 최정(SSG 랜더스)은 5회 말 1사 1·2루에서도 3구 연속 헛스윙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강철 감독은 7회 세 번째 타석에서 최정을 강백호로 교체했다. 2타수 무안타 2삼진.
9번 타자 나성범(KIA 타이거즈)도 무기력했다. 나성범은 5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 몸에 맞는 공으로 첫 출루했지만 곧바로 견제사를 당했다. 7회말과 8회 말에는 연타석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7-8로 추격한 8회 2사 만루에서 나온 3구 삼진이 결정적이었다. 3타수 무안타 2삼진. 대표팀은 8번 양의지가 3타수 2안타(1홈런) 3타점으로 활약했지만, 앞뒤 타선에 배치된 최정과 나성범이 침묵하면서 화력이 크게 떨어졌다.
마운드에선 네 번째 투수로 등판한 소형준(KT 위즈)이 부진했다. 4-2로 앞선 7회 초 등판한 소형준은 첫 타자 로비 퍼킨스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냈다. 후속 울리치 보야르스키의 중전 안타, 팀 케넬리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 위기에 몰렸다. 이강철 감독은 곧바로 김원중(롯데 자이언츠)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김원중은 첫 타자 알렉스 홀을 삼진 처리했지만 글렌다이닝에게 통한의 역전 스리런 홈런을 허용했다. 볼카운트 1볼-1스트라이크에서 던진 3구째 포크볼이 떨어지지 않고 가운데로 몰린 결과였다. 소형준은 3분의 1이닝 1피안타 2실점. 김원중은 1이닝 1피안타(1피홈런) 1실점. 경기 뒤 이 감독은 "(소형준이) 최대한 안정된 투수라고 생각해서 올렸는데 거기에서 3점을 주면서 흐름을 넘겨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패인을 곱씹었다.
8회 초 대표팀의 여섯 번째 투수로 등판한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더 심각했다. 양현종은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김원중의 배턴을 이어받아 안타-2루타-홈런으로 대량 실점했다. 0이닝 3피안타(1피홈런) 3실점. KBO리그 최고의 왼손 투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했다.
기록되지 않은 미숙한 플레이도 있었다. 대표팀은 6-8로 뒤진 8회 말 1사 만루에서 오지환의 2루 땅볼로 한 점을 추가했다. 순간적으로 호주는 포수 퍼킨스가 1루 파울 지역으로 커버를 나갔고 포수 자리를 투수 윌 셰리프가 커버하지 않으면서 홈플레이트가 비었다. 먼저 득점한 이정후가 3루 주자 박해민에게 들어오라는 수신호를 다급하게 보냈지만, 반응이 없었다. 과감하게 홈을 파고들었다면 동점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디테일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