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 한국(KBO리그)에선 제구나 커맨드 능력을 갖추지 못해도 요행이 가능했다. 나쁜 공을 던져도 넘어가니까 (부족함이 있어도) 좋게 포장됐다. 그런데 볼카운트를 관리하거나 경기를 끌고 가는 능력이 떨어졌고 국제대회에 나오는 강타자들이 약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번 한·일전에서는 우리 투수들의 제구력, 커맨드 능력의 민낯이 드러났다. 젊은 투수들이 문제를 자각해야 한다. 어느 정도 커맨드 능력을 갖췄고 내가 던지려고 하는 곳에 몇 퍼센트 투구할 수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이 부분이 부족하면 앞으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도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홈플레이트 너비가 17인치(43.18㎝)인데 우리 선수들은 이 범위를 벗어난 투구가 너무 많다. 도저히 대표 선수라고 말하기 창피할 정도였다. 17인치 보더라인에서 공을 살짝 넣고 빼는 일본 투수들과 차이가 컸다. 감독에게 뭐라고 말할 게 없는 수준이었다. 투수가 어느 정도 던져주고, 수비를 비롯한 나머지 부분에서 팽팽한 상황이 연출됐을 때나 "투수 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감독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올라오는 투수마다, 누굴 내놔도 볼넷을 남발하니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공인구(롤링스)가 미끄럽다는 건 핑계다. 모두 같은 조건 아닌가.
구창모(NC 다이노스)를 비롯해 평가전부터 안 좋은 선수들이 있지 않았나. 그런 선수들이 많다 보니 제구가 떨어져도 힘 있는 선수로 가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제구가 생각 이상으로 되지 않고, 투구 수 제한이나 마운드에 오른 투수가 최소 세 타자를 상대하는 규정이 맞물리면서 혼선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대표 선수 선발 과정도 되돌아봐야 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경기마다, 라운드마다 투구 수 제한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대회여서 선발 투수(최종 엔트리 투수 15명 중 10명이 선발 자원)가 아니어도 연투가 가능한 1이닝 불펜 투수들을 뽑았으면 어떨까 싶다.
이번 WBC에서는 필승 조로 나가는 젊은 투수들의 제구나 커맨드가 유독 흔들린다. 국제대회에선 상대 국가를 이기고 좋은 성적을 내 한국 야구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젊은 선수에게 기회를 주고 키운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타격도 그렇지만 투구도 리듬과 밸런스, 하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 젊은 투수들은 힘에만 의존하는 투구를 하니까 같은 현상을 보인다. 순간적으로 공만 빠르지 전혀 커맨드가 되지 않는다는 건 기본자세가 안 됐다는 거다. 그런 점부터 더 깊이 연구하고 선수들에게 주입해야 한다. 호주전에선 본헤드 플레이(강백호, 2루타 이후 세리머니 하다 아웃)가 나와서 난리가 났다. 야구에선 흐름이 중요한 만큼 그런 플레이를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최근 그런 얘길 하면 선수들에게 잔소리처럼 들리고 '꼰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대한민국 야구가 도전을 받는 입장에서 도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배들이 쌓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기분이다. (프로는 물론이고) 아마추어 지도자들과 선수들도 돌아봐야 한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시간을 갖고 장기 플랜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수박 겉핥기처럼 현실을 즉시 하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