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어린 시절에 먹었던 음식을 평생 맛있어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저는 바닷가 출신이라서 바다에서 나는 것은 다 좋아합니다. 예외도 있습니다. 고향에서 어릴 때에 먹은 음식에 좋지 못한 기억이 담길 수도 있습니다. 강원도 양구가 고향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옥수수를 안 먹습니다. 그에게 옥수수는 최악의 음식입니다.
“옥밥이라고 했지. 옥수수를 까서 말린 게 옥쌀이고, 옥쌀로 한 밥은 옥밥이야. 이름은 예쁘지. 막 해서 따뜻한 옥밥은 먹을 만하지. 근데, 식으면 얼마나 딱딱한지 알아? 이빨이 안 들어가, 이빨이. 내가 옥밥으로 도시락을 싸다녔잖아. 도시락 먹으면 턱이 아파. 내가 이빨이 안 좋은 게 다 옥수수 때문이라니까.”
강원도 양구 친구에게 옥수수는 원수입니다. 요즘 먹는 옥수수는 친구가 어릴 때에 먹었던 옥수수와 다르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는 귀를 막습니다. 생긴 게 똑같은데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느냐는 것이지요. 친구가 제 앞에 있다 치고,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니가 먹었던 것은 품종이 달라. 옛날에 니가 먹었던 것은 메옥수수야. 요즘 강원도 옥수수는 찰옥수수고. 찰옥수수는 아밀로팩틴이 100%이고, 메옥수수는 아밀로팩틴이 70%정도이지. 촉감이 달라. 아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옛날에 니가 먹었던 옥수수는 다 익은 옥수수였지. 그걸 바짝 말려서 옥쌀로 만들잖아. 요즘 우리가 먹는 옥수수는 덜 익은 거야. 풋옥수수이지. 풋찰옥수수. 완숙 건조 메옥수수와는 완전히 달라.
그리고 말야, 요즘은 단옥수수라는 것도 있어. 이것도 풋옥수수로 먹는데, 얼마나 단지 초당옥수수라고 불리는 단옥수수도 있어. 부드러워서 생으로 먹어. 아니다. 이건 원래 생으로 먹는 옥수수로 개발된 것이래.
옛날에 옥수수를 먹으면 알갱이 껍질이 이빨 사이에 끼였잖아. 그거 되게 귀찮았잖아. 요즘 옥수수는 그런 거 없어. 이물감이 하나도 없어. 강원도 홍천에 옥수수연구소가 있는데, 거기서 뭔 일을 하나 궁금해서 가본 적이 있거든. 옥수수 품종 개량의 방향 중 하나가 옥수수 알갱이 껍질을 최대한 얇게 하는 거래. 요즘 옥수수를 먹으면 이빨에 끼이는 게 없어. 얼마나 좋아.
니가 옥수수는 안 먹어도 강원도 출신이니까 이거는 알지? 풋옥수수는 따자마자 찐 것이 제일 맛있잖아.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지고, 단맛도 점점 없어지고. 7월이면 강원도 홍천과 춘천, 양구, 인제 국도변에 옥수수 판매 천막이 쳐지지. 이때가 또 소양호와 파로호 붕어 낚시 시즌이야. 내가 낚시꾼이잖아. 낚시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옥수수를 꼭 사지. 여기 옥수수는 맛이 달라. 금방 따서 찐 것이라서.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해. 아스파탐 같은 감미료를 넣어서 찌는 데가 있어. 안 넣어도 충분히 맛있는데 하면서 투덜거리게 되지. 그런데, 지난해에 홍천 국도 어느 휴게소에서 옥수수를 파는 한 할머니가 내게 이러는 거야.
“우리도 아스파탐 넣은 옥수수 안 먹어. 옥수수는 아무것도 안 넣고 쪄야 맛있잖아. 여기서 파는 옥수수는 서울 사람들이 먹는 거잖아. 서울 사람들이 아스파탐 넣고 찐 옥수수가 맛있다며 그걸 사먹어. 어쩔 수 없이 감미료를 넣는 거야.”
그날 이후 나는 옥수수에 감미료 넣었다고 툴툴거리지 않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음식은 소비자의 수준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잖아. 단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다수이면 판매자는 그에 맞출 수밖에 없지. 나는 그걸 피하고 싶은데,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투덜거려봤자 성질 나쁜 놈으로밖에 안 보일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아스파탐 넣은 옥수수를 그냥 먹어. 그러면서 작게 혼잣말을 하지. “옥수수는 그냥 쪄도 맛있어요” 하고.
되돌아보면 말야, 우리가 어릴 때에 강원도만 살기 힘들었던 것은 아냐. 내 고향인 마산이 그때에는 부유한 도시에 들었는데, 도시락을 못 싸오는 친구들이 많았어. 딱딱한 옥수수밥이지만 넌 그래도 도시락을 먹었잖아. 그러니 옥수수에 대한 아픈 기억은 버려도 되지 않겠어? 우리나라가 말야, 선진국이래잖아. 후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서 죽게 되다니, 우리 세대는 복도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