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덕후' 임찬규(31·LG 트윈스)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받는다.
임찬규는 15일 2024년 프로야구 FA 자격 선수로 공시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겨울 FA 자격을 갖춘 KBO리그 선수는 총 34명. 권리를 행사하려는 선수는 17일까지 신청한 뒤 자격이 승인되면 19일부터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임찬규의 FA 권리 행사는 기정사실에 가깝다. 커리어 하이 시즌(14승 3패 평균자책점 3.42)을 보냈고 팀이 통합 우승까지 차지하는 등 여러 가지 호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시장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을 전망이다. FA 자격 선수 중 투수가 15명인데 계약이 가능한 '규정이닝 선발 투수'는 사실상 임찬규뿐이다. 박세웅(롯데 자이언츠)과 문승원(SSG 랜더스)을 비롯한 투수들이 일찌감치 비FA 다년 계약으로 묶이면서 '선발 품귀 현상'이 심화했다. 수요와 공급이 몸값을 결정하는 FA 시장에서 매물이 적다는 건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조건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FA 제도가 시작된 이후 선발 자원이 적게 풀린 시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임찬규는 나이(1992년 11월생)가 어려서 그 부분도 강점"이라며 "어깨가 소모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투구 수가 많은 유형이 아니라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임찬규는 1년 전 FA 자격을 갖췄지만 권리 행사를 보류했다. 개인 기록(6승 11패 평균자책점 5.04)이 떨어진 탓에 좋은 계약을 제시받기 어려울 거로 판단했다. 올 시즌 전망도 밝지 않았다. 강효종·박명근 등과 펼친 시범경기 5선발 경쟁에서 밀려 불펜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4월 중순 '임시 선발'로 투입된 뒤 자리를 꿰찼다. "머리에서 구속을 지워야 한다"는 염경엽 LG 감독의 조언대로 완급조절에 신경 쓰면서 성적이 향상했다. 직구 평균 구속이 140.8㎞/h에 불과하지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그리고 슬로 커브를 적재적소 섞어 타격 타이밍을 빼앗았다. 결과적으로 FA를 1년 재수한 선택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임찬규는 걸출한 입담을 자랑한다. 그는 지난 6일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2002년 LG의 마지막 KS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떼썼던 기억이 난다. LG의 KS에 등판하는 것만으로 나는 성공한 '덕후(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라고 생각한다"며 껄껄 웃었다. 임찬규는 KT 위즈와의 KS 3차전에 선발 등판, 3과 3분의 2이닝 1실점하며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1승 1패에서 2승 고지를 선점한 LG는 4승 1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차명석 LG 단장을 향해 "우승하고 FA 되면 말 안 해도 절 찾으셔야 할 것"이라고 말한 애교 섞인 선전포고가 현실이 됐다. 염경엽 감독은 "나하고 의리를 지킬 거로 생각한다"며 잔류를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