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만난 구자욱(30·삼성 라이온즈)에게 비시즌을 어떻게 보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주장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야 하니까요”라며 씩씩하게 말했다.
삼성은 새 시즌 주장으로 구자욱을 선임했다. 지난해 중반 오재일의 후임으로 주장직을 맡은 구자욱이 시즌 시작부터 주장을 맡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012년 삼성에 입단한 지 12년 만이자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한 세월만 따지면 9년 만이다. 삼성의 미래였던 그는 어느새 ‘삼성의 심장’으로 성장했다.
주장을 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구자욱의 캡틴 선임은 사실상 오래전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 구자욱은 2015년 1군에 데뷔하면서 타율 0.349, 11홈런, 57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신인상을 수상, ‘포스트 이승엽’이라 불리며 팀을 이끌어갈 유망주로 낙점받았다. 언젠간 이승엽처럼 삼성을 대표하는 타자가 돼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구자욱도 삼성도 기나긴 암흑기에 빠졌다. 삼성은 2016년 이후 2021년(정규시즌 2위)을 제외한 7시즌 동안 가을 무대를 밟지 못했고, 구자욱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면서 우승과 멀어져 갔다. 어느덧 구자욱을 수식하는 ‘포스트 이승엽’이라는 타이틀도 사라진 지 오래. 구자욱으로선 부진한 개인 성적에 팀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연할 것만 같았던 주장직도 멀어져갔다.
그러나 최근 구자욱이 부활의 날갯짓을 켜자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1시즌 ‘20(홈런)-20(도루)’ 클럽 가입에 이어 2023시즌 타율 2위(0.336)로 에이스의 면모를 펼쳤다. 예전엔 성적이 안 나오면 그라운드에서 불만을 표출하는 모습이 잦았지만, 최근엔 팬들을 위해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웃는 얼굴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일이 많아졌다.
구자욱은 “(강)민호 형에게 많이 배웠다. ‘우리가 좋아서 (야구를) 하는 건데, 인상 쓰지 말고 밝게 하자’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라고 달라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내가 인상 쓰고 있으면 팀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팀원들을 위해, 팬들을 위해 달라지려고 노력하면서 내 모습도 성적도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주장직을 단 올해는 더 본격적으로 ‘팀 퍼스트’를 외쳤다. 그는 “비시즌 동안 우리 팀 선수들이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 새로운 선수들도 많이 영입됐고 팀에 어린 선수들도 많아졌다. 이들과 어떻게 하면 잘 호흡할 수 있을지 생각을 많이 했다”라며 지난겨울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그는 "좋은 선수들이 많아졌으니 팀 성적도 분명 좋아질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이 될 거라 믿는다"라며 웃었다.
개인 성적에 대한 기대도 크다. 구자욱은 지난해 타율 2위(0.336) 출루율 2위(0.407) 장타율 4위(0.494) 안타 10위(152개)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올 시즌 수비 시프트 제한과 베이스 크기 확대 등 신설된 제도도 구자욱에겐 호재다.
다만 한 가지 우려 요소가 있다면 바로 ‘건강’이다. 지난해 구자욱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 달 동안 전열에서 이탈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그때 팀 성적도 함께 고꾸라졌다. 박진만 삼성 감독과 이종열 삼성 단장도 이구동성으로 “건강한 구자욱이 있어야 팀도 승리한다”라고 말했다. 구자욱은 “올해는 건강한 한 해를 만들어 가을야구와 함께 즐겁고 행복한 한 해가 되게 하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