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샤바랭이 한 말입니다. 음식 관련 글에서, 적어도 한국에서는,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일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샤바랭의 이 말이 사실인지 따지는 사람을 저는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유명한 사람의 유명한 말이니 검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아니 되지요. 인간은 늘 의심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고요.
샤바랭이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고 했으니, 제가 샤바랭에게 “저 황교익이 먹는 것은 김치찌개입니다”라고 대답해봅니다. 그러면 샤바랭이 황교익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겨우 “황교익 당신은 한국인이겠군요” 밖에 더 있겠는지요.
독자 여러분도 저처럼 상상의 샤바랭에게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말해보세요. 샤바랭이 여러분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샤바랭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므로 그의 말을 살짝 고쳐봅시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말해주겠다” 정도이면 되려나요?
지금부터는 제가 브리야 샤바랭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한 작업을 해보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여러분이 먹는 무엇’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질 것이며, 여러분은 이에 대해 충실히 답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먹는 무엇’을 내일부터 못 먹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러니까, 내일 죽을 것인데 오늘 마지막으로 먹게 될 음식을 떠올려봅시다.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가요. 김치찌개인가요? 일단은 김치찌개라고 해봅니다.
그 다음에 저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김치찌개인지요.” “돼지고기가 들었나요, 고등어가 들었나요, 아니면 꽁치통조림이 들었나요.” “그 김치찌개는 처음 먹은 것이 언제인지요.” “그때에 그 김치찌개를 누구랑 같이 먹었는지요.” “누가 해주었던 김치찌개인지요.” “그 김치찌개를 왜 죽기 전에 먹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요.”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게 되면 ‘김치찌개를 먹는 어떤 이’의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고향이 어디며 어떤 가정환경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아주 짧은 시간에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식의 문답이 5분 정도 진행되면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이 진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문답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자신이 먹는 음식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김치찌개를 해주었던 어머니나 할머니가, 김치찌개를 함께 먹었던 가족과 친구가 그 자리에 호출이 됩니다. 내가 먹는 음식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이 담겨 있고, 그 음식을 말하는 것이 곧 그 추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규모 강연에서 브리야 샤바랭의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는 말을 걸어놓고 문답 이벤트를 벌이기도 합니다. 이때에 조심해야 할 것은 마음이 너무 여릴 것 같은 사람에게는 문답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샘이 한번 터지면 감당이 안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뇌과학의 대가인 박문호 박사는 “미각의 절반은 기억이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을 때에 음식 그 자체만 먹는 게 아닙니다. 그 음식을 요리한 사람, 그 음식을 함께 먹는 사람까지 먹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떤 음식이 먹고 싶은 것은 예전에 그 음식을 자신에게 요리해준 사람, 예전에 그 음식을 자신과 함께 먹은 사람이 그립다는 뜻입니다.
음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오는 눈물의 음식 강연을 몇 차례 하고 나서 저도 샤바랭처럼 명언을 하나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여 탄생한 문장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을 울려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