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있다. '포기하지 않는다'다. 의례적인 인터뷰나 감독의 지시를 따른 것이 아닌,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보인다. 프로의 야구다.
10월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와일드카드(WC) 최종 2차전 9회말 1사 만루. 전진 수비를 하던 KIA 중견수 김호령은 LG 3번 김용의의 타구를 전력 질주해 잡아냈다. 그리고 내야를 향해 던졌다. 3루 주자 황목치승은 태그 업으로 홈을 향해 달렸다.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 외야수는 캐치를 포기한다. 하지만 김호령은 LG 주자들이 태그 업에서 실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낮은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캐치와 송구를 했다. 포기하지 않는 플레이였다. LG 3루 주자 황목치승, 2루 주자 손주인도 김호령의 포구 뒤 정확하게 귀루해 달렸다. 역시 방심과 포기가 없었다.
넥센과 LG의 준플레이오프(준PO). 시즌 중반부터 거론된 감독 거취 문제로 넥센의 구단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1차전에선 0-7로 완패했다. 하지만 넥센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2차전을 5-4로 이겼고, 최종 4차전에선 최종 스코어 4-5 접전을 이어 나갔다. 최종전이 끝난 직후 넥센 감독이 내년 임기를 '포기한다'는 공식 인터뷰 정도가 옥에 티였다.
PO에서도 그랬다. 7월 이후 잇따른 악재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NC는 1차전에서 0-2로 뒤진 9회말 석 점을 뽑아내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선두 타자 안타를 치고 나간 박민우는 무사 1루에서 2루 도루를 감행했다. 1957~2015년 메이저리그 전 경기 결과를 바탕으로 할 때, 같은 상황 무사 1루의 경우 홈팀 승리 확률은 16%, 무사 2루의 경우 17%다. 박민우의 도루는 1% 차이만을 가져왔을 뿐이다.
무사 1루든, 무사 2루든 상대팀 마무리가 등판하는 9회에 석 점 이상을 뽑아 역전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승리 확률 변화는 낮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큰 효과가 없는 플레이 하나지만, 동료들이 공격을 이어 나간다면 훨씬 큰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많다. 당장은 무의미해 보이는 작은 노력들이 쌓여 큰 변화를 이끌어 낸다.
PO 2차전 7회말에 결승 투런홈런을 친 박석민은 원래 인코스 대결을 즐기지 않는 타자다. 하지만 이날 등판한 LG 에이스 데이비드허프의 주 무기는 우타자 몸 쪽 직구와 바깥쪽 체인지업. 박석민은 경기 전부터 허프의 몸 쪽 직구에 대비했다. 좋은 투수의 좋은 공은 대비한다고 다 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허프의 몸 쪽 공은 다소 높았고, 몸 쪽 승부를 포기하지 않았던 박석민의 배트에 걸렸다.
두 팀 모두에 결과가 절실한 시리즈다. 하지만 두 경기를 치르는 동안 NC 김경문, LG 양상문 감독은 선수들에게 특별히 동기부여를 요구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선수들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다.
5전 3선승제 단기전에서 NC는 2승을 먼저 따냈다. 역대 16번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을 모두 이긴 팀 13개(81%)는 한국시리즈에 올라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24일 4차전의 승리 확률은 NC와 LG 각각 50대50이다. 어떤 팀이든 포기하거나 방심할 이유가 없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프로 세계에서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리더가 무의미한 노력을 관철시키는 게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