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방송된 tvN 드라마 '시그널'은 무전기로 연결된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오래된 미제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담았다. 범죄 수사물의 스릴과 긴장감은 물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형사들의 집념, 장기 미제 사건 피해자 유족들의 상처까지 그려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제5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작품상·극본상·여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이 드라마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시그널'에 경기 남부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차용된 화성 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됐기 때문. 지난 2006년 4월 2일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경찰은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올해부터 지방청 중심 수사체제가 구축되면서 미제수사팀이 주요 미해결 사건을 총괄하게 됐다. 경찰은 DNA 분석 기술이 발달해 십수 년이 지난 후에도 증거물에서 DNA를 검출한 사례에서 착안해 화성 사건 증거물 일부를 7월 중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증거물에서 DNA를 발견했고, 이와 일치하는 대상자가 '1994년 청주 처제 성폭행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건 당시엔 과학 수사라는 개념이 없었고 기술도 여의치 않아 수사에 애를 먹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DNA 분석 기술이 발달하며 33년 동안 잡지 못한 희대의 살인마를 수사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시그널' 1회에서 김혜수(차수현)가 공소시효 만료 직전 붙잡은 오연아(윤수아)에게 했던 "아주 작은 혈액이라도 묻어있기만 하면 10년, 20년, 100년이 지나도 DNA 검출은 가능하다는 거야. 현대과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이지"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화성 사건 진범이 언젠가는 잡힐 것을 예견한 듯한 대사는 사회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담은 명작의 품격을 증명한다.
조진웅(이재한)과 이제훈(박해영), 김혜수는 소중한 사람을 강력 범죄로 잃었고 그 사건이 모두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렇기에 '시그널'은 미제 사건을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루지 않았고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수사를 이어갔다. 비록 화성 사건은 지극히 초기 단계이고 용의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사건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경찰이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는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시그널'의 주제 의식과 일맥상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