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43)가 쓴 '태양의 후예' 속 명대사다. 이 대사는 곧 김은숙 작가 본인의 삶에 반영됐다.
백상예술대상 두 번의 극본상에 이어 지난달 3일 제53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거머쥔 김은숙은 '마법'을 부렸다. 지난해 '태양의 후예'에 이어 올해는 '도깨비'로 케이블 사상 최고 시청률 20%를 돌파 했고 한류 콘텐트를 확장 시켰다. 사드로 인해 중국 내 한류 콘텐트가 제한돼 있음에도 현지에서는 불법으로 너도 나도 '도깨비'를 몰래 봤다. 그만큼 김은숙의 파급력은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장악했다. 그리곤 백상 대상까지 이어졌다.
수상 후 만난 김작가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극본상을 노희경 선배님이 받는 걸 보곤 '도깨비'가 대상을 받을 줄 알았어요. 제 이름이 불릴거라곤 상상도 못 했죠. 그랬으니 그 큰 상을 받고 안 떨 수가 없죠"고 말했다. 김은숙 작가는 수상 후 소감을 말하며 사시나무 떨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 했다.
'도깨비'는 2010년 방송된 '시크릿가든' 전부터 이미 생각해둔 작품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할 수 없었지만 8년여 흘러 제작했고, 명작 반열에 올랐다. "그때는 소재와 관련해 제한이 있었어요. 그 큰 스케일과 판타지 로맨스를 어떻게 담아낼지 막막했죠. 그래서 반려당하고 낸 작품이 '시크릿가든'이었어요. "
김 작가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강원도 강릉 작은 가구 공장서 경리로 일했다. 작가의 꿈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본사 발령이라고 어머니를 속여가며 상경했고 늦게 대학교에 입학해 꿈을 키웠다. "남의 집 식당에서 설거지하던 엄마에게 등록금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그때 빌린 돈이 300만원 정도에요. 그렇게 졸업하고 대학로로 가 연극을 쓰다가 쉽지 않은 현실에 다시 강릉으로 갔어요. 그때도 엄마에게 잠시 쉬러 온 거라고 했고요." 그렇게 작가 꿈은 꺾이는 듯 했지만 연극을 유심히 본 지금의 제작사 화앤담픽쳐스 윤하림 대표의 전화 한 통으로 드라마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날 자리엔 15년 넘게 연을 이어 온 윤하림 대표와 '태양의 후예' '도깨비'에 이어 차기작 '미스터 션샤인'을 함께 할 이응복 감독, '파리의 연인'때부터 연을 맺으며 작가-매니저 이상의 의미를 이어온 킹콩 바이 스타쉽 이진성 대표가 함께 했다. 오후 6시 시작된 술자리는 자정을 훌쩍 넘겼다.
1편에 이어...
-어릴 적부터 꿈이 작가였나요. "늘 꿈꿔왔어요. 강릉 백일장을 휩쓴 아이였는데 집안이 어려웠어요. 엄마는 남의 식당에서 설거지를 했어요. 장녀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해야했죠. 강릉의 작은 가구공장서 7년 여 경리로 일 했어요."
-꿈에 다가가기 힘들었네요. "공장 옆에 작은 서점이 있었어요. 돈을 벌었으니깐 책은 마음놓고 사서 봤어요. '태백산맥' '토지' 등 장편소설을 주로 읽었어요. 서울로 가기 전 날 공교롭게 서점도 문을 닫았는데 사장님이 '토지' 마지막편을 선물로 줬어요."
-뒤늦게 대학교를 간 계기는요. "잘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시내에 당구장을 오픈했어요. 친구들끼리 놀러갔는데 당구나 포켓볼을 못 쳐서 구경하며 두리번 거리는데 영화잡지가 있더라고요. 맨 뒷장에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입학 요강이 있었어요. 날짜가 남았길래 지원했죠."
-그리곤 결과를 기다렸나요. "아니요. 7년간 모은 돈을 들고 서울로 향했어요. 엄마에겐 본사 발령이 났다고 거짓말했고요. 서울 길음동 1000만원짜리 전세를 얻었고 합격자 발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는데 합격했죠. 그러고 나니 등록금이 없었어요. 엄마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했죠. 저에게 '첫 딸이라 너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넌 할만큼 했다' 이제 네 인생 살라'며 옆집서 돈을 빌려 300 여 만원을 부쳐줬어요. 지금 그 돈의 1000배를 갚으며 살고 있어요."
-이후 생활은 어땠나요. "졸업하곤 대학로로 가 연극을 썼어요. 그 곳에서 지금 제작사 윤하림 대표를 처음 만났죠. 30만원짜리 월세 단칸방에 살았어요. 연봉이 300만원도 안 됐어요. 그래서 다시 짐 싸서 강릉으로 갔어요. 엄마한텐 '잠깐 왔다'고 거짓말하고 일주일째 와 있는데 윤하림 대표가 기획안을 수정해달라고 연락이 왔죠. 당시 노트북도 없었어요. 컴퓨터도 고장나고. PC방을 가서 밤새 작업해 보내줬어요. 그걸 너무 잘 썼던 거죠.(웃음) 조연 캐릭터를 고쳐 달랬는데 주인공을 만든 거에요. 그 제작사에서 저를 찾았고 다시 서울로 왔죠."
-그게 어떤 작품인가요. "MBC '남자의 향기'에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남자주인공을 투 톱으로 가야했어요. 이후 그 회사에 들어갔고 월 70만원 꼬박 받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았어요. 돈 아끼려고 사무실에서 잤다가 직원들 오기 전에 화장실 가서 씻고요. 단막극 하나 쓰지 않아 '낙하산'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지금 수입은 괜찮죠. "윤하림 대표가 많이 주네요.(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제 작품이 새로 시작하면 케이블 채널에서 기존 작품 재방송을 하더라고요. 그러면 재방송료가 무시 못 해요. 어느 날 집에서 TV를 켰는데 채널을 올리는데 '상속자들' '태양의 후예' '시크릿가든' '도깨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뭔가 좀 뿌듯했어요."
-작업 안 할 땐 뭐하나요. "주로 필리핀 마닐라에 있어요. 딸이 거기 있으니 그 곳에서 학부형이 돼야죠."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소문은 맞나요. "제가 아니라 딸이 좋아하는 거에요. 딸이 방탄소년단 음악을 좋아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티켓 오픈하면, 미친듯이 클릭해서 구해주는 일이에요."
-그럼 누굴 좋아하나요. "저 뷰티에요. 하하하. 특히 윤두준 씨의 팬이고 하이라이트의 음악을 좋아해요. 유튜브에 유명한 영상 중 어떤 팬이 윤두준 씨에게 '오빠 저 뷰티에요'라고 하면 안아주는게 있는데 언젠가 윤두준 씨 만나면 한 번 해보려고요.(웃음)"
-왜 좋아하냐고 물어봐도 되나요. "하이라이트의 음악을 좋아해요. 요즘 아이돌 노래는 따라가기 힘들어요. 우리 세대가 좋아하는 노래는 가사에 한이 있어야 돼요. 하이라이트 노래가 그래요. 한도 있고 꽂히는게 있어요. '너의 행복을 빌며 떠나겠다'는 가사 얼마나 아련해요.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노래 하나를 들으면 앞-뒤 스토리가 떠올라야하는데 하이라이트가 그래요."
-딸 자랑 좀 해주세요.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잘 이해해줘요. 사실 작품을 새로 들어가면 아이와 통화도 뜸해지고 좀 소홀해 질 수 있으니 너무 미안하죠. 그런데 의연하게 '엄마, 일 안 하면 금방 잊혀지니 꾸준히 작업해'라고 말해요. 저보다도 어른스러운 생각을 해주니 늘 고맙고 미안하죠."
-슬럼프가 있었나요. "없었던 거 같아요. 드라마를 할 땐 정신없이 대본을 쓰고 끝나고 나면 새로운 기획안을 쓰니깐요. 그렇게 반복하면 슬럼프를 겪을 새도 없죠."
-잘 안 써질 땐 어떻게 하나요. "그냥 자요. 12시간 넘도록 배고프고 허리 아플 때까지 자고 일어나면 죄책감이 생겨요. 오래 잔 것에 죄스러워하면 자연스레 책상으로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글이 써져요. 그럼에도 생각이 안 나면 생각날 때까지 생각해야죠."
-세상 밖으로 안 나온 아이템도 있나요. "많죠. 보류돼 있는 작품이 5편 정도 있어요. 드라마는 시기도 중요하다 보니 5편이 언젠간 나올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 없어 보여요. 보류된 작품들은 나중에 꺼내보면 트렌디함이 없더라고요. 대중이 어떤 것에 열광하고 궁금해하는지 늘 알아야 해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그때 그때 꽂히는게 있으면 기획안을 쓰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직원들과 회의하면서 발전시키고, 반응이 별로면 손을 놓고요."
>>3편에 계속
김진석 기자 superjs@joongang.co.kr 사진=김민규 기자 장소=역삼동 육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