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이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를 보았다'(2010)의 장경철이 아니었다. 경찰 후배를 사지(死地)에 몰아넣는 '신세계'(2012)의 냉혈한 강과장도, 비열함이 돋보였던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의 최익현과도 거리가 멀었다.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52)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해보였다. 가득한 흰머리와 수북하게 쌓인 턱수염은 그동안의 고단함을 느끼게 했다. 영화 '명량'은 그에게 그만큼 어려운 '숙제'였다. 데뷔 26년차에 누구 못지않은 필모그래피를 쌓았지만 이번처럼 어려운 건 없었다. 그는 언론시사회가 끝난 후에도 "개운치 않다"는 말로 심경을 대신했다. 고심 끝에 '명량'을 선택했고, 기대보다 두려움을 안고 이순신을 연기한 최민식에게 영화 뒷이야기를 물어봤다.
-완성된 영화를 봤나.
"기술시사와 언론시사 두 번을 봤다. 기술시사는 말 그대로 주요 스태프와 영화 관계자들이 기술적인 점검을 하는 거다. 언론시사회는 너무 긴장이 돼 앉아서 못 보겠더라."
-서서 영화를 본건가.
"'파이란'(2001)을 개봉할 때는 광화문 쪽에 있는 영화관(시네큐브)에서 언론시사를 했는데, 그때는 계단에서 봤다. 뭐 편한 자세로 보질 못하겠더라. 오랜만에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서서보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 2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뒤에서 봤다. (영화 중에) 핸드폰을 사람들이 많이 보면 망한 건데 불빛이 많이 안보였던 거 같다. 내심 안도했다.(웃음)"
-출연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걸로 아는데.
"김한민 감독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윤종빈 감독이 데리고 왔더라. 그때가지만 해도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왜 하려고 하냐, 투자는 결정됐냐' 같은 걸 물어봤다. 명량해전에 대한 이야기는 대략 알고 있지만 소재에 대한 상업성을 저울질 하게 됐다. 그때부터 김한민 감독이 이 작품을 연출하려는 의도를 풀더라. 두 번째는 소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김 감독은 '명량' 이외에도 역사를 영화화 하는데 관심이 많더라.
-공감대를 형성한 건가.
"김한민 감독이 이봉창 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이봉창 의사가 폭탄을 던지고 잡혔을 때 뭐라고 하신 줄 아나. '점잖게 다뤄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되게 짠했다.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품격이랄까. 그런 게 느껴지면서 저런 모습이 영화를 통해 배우가 멘트를 하면 전율이 올 거 같았다. 김 감독의 생각이 괜찮았다. 고루한 가치, 집안 구석에 처박아 놓고 잊고 살았던 그 가치. 이렇게 미련한 친구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용기가 좋았다."
-술이 깨고 후회는 안했나.
"술기운에 가자고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생각해보니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고 실사도 필요해 배를 타고 실제 바다에도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고, 가보자고 생각했다. 지난해 6월 크랭크인을 했는데 (돌이켜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주안점을 뒀던 부분이 있었나.
"이야기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했다. 이순신 장군의 출생부터 백의종군이 끝나고, 명량해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까지 (많은 사건 중에서) 어디에 주안점을 둘 것이냐는 것. 김 감독은 사실적인 전쟁 신을 이야기하더라. 내가 보완을 한 부분이 있다면 '왜 저들이 피터지게 싸우는지 반드시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아니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김 감독도 그 부분을 알고 있었다. 둘이 지겨울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웃음)"
-영화에 불필요한 허구적인 내용이 없더라.
"쓸데없는 재해석이나 상상력을 동원하면 안하느니만 못하는 게 될 수 있었다. 명량해전과 충무공에 대한 팩트(사실)를 고스란히 전달만 해도 영화적 감동이 있다. 여기에 이견이 있는 가설을 최대한 배제했다. 있는 그대로, 난중일기에 표현돼 있고 여러 저술서에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걸 그대로 담자고 했다."
-명량해전이 일어난 울돌목(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의 격량이 이순신의 마음과 같더라.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딱 그런 심정이었다. 장군님 처소에 앉아 '장군님 얘기 좀 해주세요' 이랬는데 정말 뒤도 안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속된 말로 '어림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시는 거 같았다.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저분의 눈빛, 저분의 목소리, 저분의 걸음걸이, 어떤 식으로 칼을 잡으셨는지 그런 중압감이 있었다. '난 연기하는 거야'라고 되새겼지만 내가 설정한대로 하려는 게 안됐다. 처음에 관련 서적과 난중일기를 읽었을 때 '정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후손이 미화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한 인격체를 갖고 있었다. 이 분을 과연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까. 굉장한 딜레마였다."
-연기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아직도 확신이 없다. '취화선'(2002)을 할 때도 그랬지만 이 정도의 기분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위안도 갖고, 편안하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감을 잡을 수 없더라. 그 분(이순신)의 실제가 너무 궁금했다. '내가 상상해서 하면 된다'는 여유가 안 생기더라. 더 약이 올랐다."
-'취화선'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이번 작품에도 그런 의미가 있나.
"김한민 감독의 의도에 동화됐다. '취화선' 때는 활동하고 계시는 영화계 최고 어르신들과 작업을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뒀다. 종합검진을 받는 느낌이었다. 자세부터가 달라졌다. 촬영장에 늦는다던가, 꾸벅꾸벅 조는 것도 없었다. 정일성 촬영감독 앞에서는 감히 하품도 못했다. 하지만 '명량'에서는 김명곤(일본군 대장 도도 역) 선배님을 제외하면 내가 고참이더라, 후배 감독의 이야기지만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순신은 영화 내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번 영화에 대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뀐 포인트가 있었나.
"동료배우들이었다. 내가 확신을 가지지 못했을 때 승병으로 나왔던 친구들의 리액션이 진짜 절절했다. 부상도 엄청 당했다. 나야 배 위 망루에 서서 지휘하는 게 많았고 험한 촬영은 그 친구들이 다 했다. 눈 들이 다 돌아있었다. 그 몰입감이 대단했다. 내가 찌릿찌릿했다. 나도 돌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 친구들의 대사받는 걸 충실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용기라기보다는 많은 힘을 얻었다. 제작부 한 친구는 촬영장 근처에서 다친 배우들을 후송하기 위해 항시 대기 중이었다. 이토록 헌신적인 배우와 스태프들이 또 있을까 싶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다친 곳은 없었나.
"내 부상은 그 친구들의 부상과 비교하면 진짜 뭐 아무것도 아니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에서 막강한 호흡을 보여준) 50여명의 친구들. 나중에 이 친구들이 무기를 다루는 모습은 거의 군대 수준이었다.(웃음) 병과 주특기가 정해져 있었다. 옛날 병기를 다뤄본 게 있었겠나. 하지만 나중에는 정말 기가 막혔다. 숙달된 조교가 포를 넣으면 또다른 한 명이 쏘고, 그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정말 박수가 나오더라."
-개봉을 앞둔 할리우드 영화 ‘루시’와 비교하면 어땠나.
"'루시'는 내가 연기를 하면서 최고의 외형적인 대접을 받은 작품이다. '이게 할리우드구나' 싶더라. 배우 대기실이 스위트룸이었다. 뤽 베송 감독 소유의 세트장이 남양주 세트장의 몇 배였다. 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오봉(쟁반) 같은 것에 밥을 가지고 온다.(웃음) 우리나라 영화 현장은 한 마디로 야전군이다. 그래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촬영 분량이 끝나면 들어가도 되는데 계속 모니터를 보게 되더라. 재밌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다. 특히 밥차가 정말 맛있다. '명량'에서도 밥의 힘으로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마쳐서 심적으론 편안하겠다.
"지금은 더 자유롭게 알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금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료도 더 찾아보고 알고 싶다. 정말 그 분은 매력으로 내게 다가왔던 게 맞다. 물론 날 힘들게도 했지만…"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고증이나 컴퓨터그래픽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논쟁도 있을 수 있다. 학계에서도 나름대로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봐달라는 것 보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과 그 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소명을 다한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잊고 있었던 가치에 대한 환기, 옛날 역사책에서나 봤던 걸 영화를 통해 알리는 것만으로도 나름 김한민 감독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한 게 아닌 가 싶다."
-한산도대첩을 비롯해 ‘명량’의 후속 작품도 제작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젠 체력이 안 된다.(웃음) 이번에도 너무 더운데 투구를 쓰고 있으니까 한 번 쓰러졌다. 눈 떠보니까 누워있더라. '명량'이 잘 돼야 투자가 되고, 경제적 손실이 없어야 가능한 이야기 아니겠나. 3부작으로 제작이 된다면 흥미롭겠지만 지금 기분으로 난 아닌 거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