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문장이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마 아침 일찍 일어나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느라 정신 없이 바쁘고, 또 비몽사몽했던 탓일 거다. 잠결에 들은 소식마냥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한국이 스웨덴에 패한 지 꼭 하루 만에 들은 소식이라 더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20일(한국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러시아와 이집트 경기를 취재하러 갔을 때, 옆자리에 앉은 이집트 기자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의아한 마음에 멀뚱멀뚱 쳐다봤더니 "일본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웃으며 얘기하는 것이다. 기분이 상한 티를 내며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얘기해줬더니 매우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다음 경기에서 멕시코를 꺾길 바란다. 우리가 오늘 러시아를 꺾고 에너지를 주겠다"고 급하게 수습했다. 하필이면 그렇게 말한 뒤에 1-3으로 러시아에 패한 탓에 기분은 더욱 나빠졌다.
기자의 기분이 나쁘든 말든, 실제로 일본은 콜롬비아를 꺾었다. 일본은 19일 러시아 사란스크의 모르도비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콜롬비아에 2-1 승리를 거뒀다. 4년 전 1-4로 완패했던 팀을 상대로 거둔 짜릿한 리턴매치 승리이자, 아시아 팀이 월드컵에서 남미 팀에 거둔 첫 번째 승리다. 굳이 전반 3분 만에 퇴장당한 카를로스 산체스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다. 수적 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산체스가 퇴장당하면서 일본에 안겨준 페널티킥은 전반 39분 터진 후안 페르난도 퀸테로의 동점골로 어찌어찌 무마가 됐다. 하지만 1-1 상황 이후는 문제가 달랐다. 전반까지 10대11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던 두 팀의 판세는 후반전에 뒤집혔다.
동점 상황에서 일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가 있었다. 승점을 노린다면 이대로 무승부로 굳히기 위해 내려앉을 수도 있었고, 반대로 수적 우위를 살려 더욱 공격적으로 나가 아예 승점 3점을 노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후자를 선택했다. 더 적극적으로 콜롬비아 뒷공간을 노리고 달려들었고 수적 열세에 상대 압박까지 더해지자 콜롬비아는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후반 28분 코너킥 상황에서 혼다 케이스케가 올려준 오른발 크로스는 산티아고 아리아스와 경합을 이겨내고 뛰어오른 오사코 유야의 머리에 맞고 콜롬비아의 골망을 흔들었다. 사실상 이날 경기를 마무리짓는 장면이었다.
일본이 콜롬비아에 이긴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4년 전 완패의 기억이 깊숙히 박혀있는 일본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장에서 만난 교도통신 취재기자는 "승리는커녕 3전 전패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고 일본 내 분위기를 전했다. 결과적으로는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바히드 할리호지치 감독을 경질, 니시노 아키라 감독을 선임한 일본축구협회(JFA)의 파격적인 선택이 성공한 셈이지만, 평가전의 부진한 성적과 할리호지치 감독과의 법정 공방까지 여러 가지가 얽히며 일본 내에서도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바닥을 쳤다. 알고 지내는 일본 기자들도 콜롬비아전 전까지 "니시노 감독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크지 않다"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은 개막 전까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고, 월드컵 전에 경질한 뒤 국내파 감독을 앉혔다. 물론 니시노 감독이 한참 뒤에 선임됐지만 경기력 문제로 비난을 받은 것도 비슷했고 선수 기용 문제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어느 정도 닮아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도 많았지만, 가장 비슷했던 건 어려운 조에 속해 '3전 전패'할 것이란 비관적인 예상 속에서 월드컵에 나섰다.
같은 3전 전패 예상 속에서 나선 월드컵인데, 불과 하루 간격으로 너무나 다른 결과가 나와버렸다. 물론 이제 첫 경기를 했을 뿐이지만 첫 승 상대로 점찍었던 스웨덴에 패한 한국과, 가장 이기기 어려운 상대로 꼽았던 콜롬비아에 승리한 일본의 분위기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국 선수들은 비난 속에 고개를 떨궜고, 일본 선수들은 어깨를 폈다. '이란과 함께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워줬다'고 얘기해주고 싶지만, 내심 승리의 주인공이 한국이 아닌 것이 씁쓸했다.
현장은 물론 한국에서 월드컵을 지켜보고 있을 팬들의 마음 역시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지켜보는 우리 마음이 이럴진대, 선수들이야말로 얼마나 승리하고 싶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 다음 상대인 멕시코가 얼마나 잘하는 팀인지, 독일이 얼마나 무서운 팀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갑갑해졌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승리, 최선을 다해 뛰고 상대에게 100% 부딪히는 것, 그게 과연 이번 월드컵에서 가능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돌아오는 길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기만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