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테랑들이다. 가볍게 말해도 무겁게 말해도 그 안에 내포 된 진심은 똑같다.
'반성', '지옥'이라는 제목을 거쳐 탄생한 '아수라'다. 아수라장 현장 속에서 몇 개월을 뛰고 구르며 동고동락했다. '아수라'는 그 수 많은 작품을 경험한 배우들도 '난이도 상( 上)'이라고 꼽은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정도 역시 '상'이다.
김성수 감독은 제작자로부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허락받고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고, 정우성은 시나리오도 읽지 않은 채 "좋다"고 선택했다가 후회하는 과정을 거쳤다.
수 십, 수 백명의 롤모델을 떠올리며 연기한 악의 근원지 황정민, 그리고 제 옷을 입은 듯 유연한 연기를 펼친 곽도원, 정만식, 막대 주지훈까지 이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무섭지만 '아수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엿보이게 했다.
개봉을 기념해 김성수 감독과 배우들이 말한 '아수라'에 대해 다시 한 번 정리해 봤다.
▶김성수 감독 "짓밟기면 고개 드는것도 사람"
"발악하다가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악당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다. 대체 어떤 가혹한 운명을 타고 났길래 나쁜짓 하는데도 보상도 못 받고 난폭한 두목 밑에서 위기 상황일 때는 희생하는가. 뭐 때문에 그렇게 충성하나'에 집중했다.
짓밟히면 짓밟히지만 고개를 드는 것도 사람이다. 정의감 보다는 악인들만 등장하는, 폭력의 먹이사슬이 얽혀있는 악인들의 생태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개봉을 하기 위해, 흥행을 위해 15세 등급에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전체 편집본에 비해 완성된 영화는 한층 순화됐다. 실제로는 조금 더 갔다. 보시기 편하게 모난 곳을 둥글게 만들었다."
▶정우성 "정우성인데 정우성 같지 않대, 하하"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는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내가 이걸 왜 하겠다고 했을까'라는 후회를 했다. 한도경이 이해가 안 됐다. 액션 느와르에 나올 법한 주인공의 모습이기는 했지만 애매하고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 세대, 감독님 마음으로 이해했다. 보고 또 보면서 그 지점을 파악했다.
대사의 절반이 욕이다. 이렇게 욕을 많이 한 역할은 없었다. 욕을 모르지는 않지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어색했다. 계속 하니까 후련은 하더라.
치열한 도경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쌓인 스트레스를 표출시키는 몸부림처럼 보이고 싶었다. 어떤 트릭이나 기교에 의해 짜이기 보다는 온전히 거칠게만 전달되기를 바랐다. 외모를 일부러 망가뜨린 것은 아니다. 정우성인데 정우성 같지 않다는 평 좋다."
▶황정민 "롤모델이 왜 없어, 뉴스만 틀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박성배라는 인물 자체가 나는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악행을 저지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의 세태들 자체가 이기적이지 않냐. 내가 잘 살기 위해서 시기하고 못되게 군다.
다만 굉장히 다중적인 인물이라 내가 어떻게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조금씩 답이 보이더라.
영화 캐릭터로서 롤모델은 없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롤모델은 차고 넘친다. 뉴스만 봐도 많지 않냐. 맨날 나오는 것이 박성배 같은 인물이다. 물론 영화처럼 그 분들이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고, 또 저질러도 오픈되지 않지만 롤모델은 참 많았다."
▶곽도원 "또 악역, 식상해 할까 두렵다"
"또 악인을 연기하는 것이 맞는다 판단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무엇보다 관객들이 식상해 할까봐. 그 두려움이 가장 컸다.
다른 전문직을 했을 때는 권력을 쓰는 모습에 중점이 돼 있었다면, 이 캐릭터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잃었을 때, 사람이 가장 강했을 때와 나약해졌을 때의 모습이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에게는 꽤 달콤한 역할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점점 무너져가는 모습에 치중했다."
▶정만식 "구겨놔도 정우성…고려청자처럼 아껴"
"정우성을 많이 때렸다. 직접 때린 것은 아니지민 건드릴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구겨놔도 정우성은 정우성이더라.
우성이 형을 앉혀놓고 때리는 신이 있는데 손이 살짝 한 번 닿기는 했다. 하지만 많은 여성 팬들이 우려 하실까봐 국보를 대하듯, 고려청자를 대하듯 아끼며 연기했다.
물론 감독님이 하라고 하니까 했다. 때릴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많이 때려봐서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부분들만 집중 공략해 빠르게 끝냈다."
▶주지훈 "감독님은 조련사, 형님들은 귀신"
"육체적으로는 지금까지 한 작품 중 난이도 최상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안 들었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내가 다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조련사다.
피로가 쌓여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힘든데 즐거웠고 현장을 떠나기 싫었다.
귀신같은 형님들 사이에서 내가 해야 할 몫이 있었다. 내 캐릭터를 좋아했고 당신들이 어렸다면 탐냈을 캐릭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걱정과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변화의 포인트만 잘 잡으면 될거야'라는 조언도 해줬다. 그런 말은 누가 못해. 근데 그게 결국 정답이었다. 역시 귀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