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무대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 흐름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러시아월드컵은 '실리 축구'가 대세였다. 즉 '수비 축구'가 대세였다. 승리하기 위한 첫 번째 초점을 수비에 맞춘 것이다. 적극적인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하며 실점하지 않고, 빠른 역습으로 한 방을 노렸다. 우승팀 프랑스를 비롯, 높은 자리까지 오른 대부분 국가가 수비 축구를 선보였다. 그러면서 빠르고 골결정력을 갖춘 선수들에게 득점을 맡겼다. 약팀들의 전유물 같았던 수비 축구가 아니었다. 같이 수비해도 차이를 만든 것은, 역습의 속도와 정확도였다. 완성된 수비력에 이어지는 빠른 공격 전환 속도는 축구 강국들만 연출해 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전체적인 조직력, 공격 전환 타이밍과 움직임, 패스의 질, 공격수의 골결정력 등이 맞물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세트피스의 파괴력이 더해졌다. 점유율 축구를 선보이며 2010 남아공월드컵을 제패한 스페인의 '티키타카' 그리고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힘과 기술을 합쳐 숨 막히는 압박으로 상대를 침몰시킨 독일 축구와 색깔이 달랐다.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결승전이 수비 축구를 보여 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프랑스는 점유율이 34.2%로 크로아티아에 완전히 밀렸다. 슈팅 개수 역시 7개로 크로아티아가 한 14개의 절반에 그쳤다. 그렇지만 승자는 수비를 잘한 프랑스였다. 4-2로 승리했다. 적극적으로 공격을 나선 크로아티아는 무너졌다.
A조 1위로 8강전에서 프랑스에 무너진 우루과이 역시 수비 축구의 진수를 보여 줬다. 단단한 수비 조직력이 우루과이 최대 강점이었고, 여기에 루이스 수아레스(바르셀로나) 에딘손 카바니(파리 생제르맹)라는 영혼의 투톱이 골을 책임졌다. 카바니가 다치지 않았다면 우루과이는 더욱 높은 곳에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개최국 러시아의 8강 돌풍 역시 수비에서 시작됐다. 결정적 장면은 우승 후보 스페인과 펼친 16강전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점유율은 26%로 스페인의 74%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하지만 견고한 수비로 승부차기까지 몰고 가는 데 성공했고, 승부차기에서 이겼다.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의 종말을 알린 경기였다.
한국이 속한 F조도 마찬가지였다. F조에서 16강 진출 유력 후보는 독일과 멕시코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가장 강한 팀은 스웨덴이었다. F조 1위를 차지한 스웨덴은 F조에서 가장 높은 8강전까지 진출했다. 틈이 보이지 않는 수비력이 스웨덴의 힘이었다. F조 한국 역시 30%도 채 안 되는 점유율로 독일을 2-0으로 무너뜨리는 기적을 연출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은 러시아월드컵을 계기로 분명히 수비 축구로 넘어갔다. 수비적인 실리 축구를 앞세우다 보니 상대를 압도하고 폭발적인 득점력을 갖춘 팀은 등장하지 않았다. 수비를 잘하는 팀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지만 공격을 잘하는 화끈한 팀이 없어 많은 축구팬들이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우승팀 프랑스에 2010 스페인과 2014 독일처럼 뚜렷한 색깔과 절대적인 기세가 보이지 않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프랑스는 결승까지 올라오면서 수비 축구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