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 황제' 진종오(35·KT사격단)가 21일 한 말이다. 새로운 영웅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10m 공기권총 개인전·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청용(17·흥덕고)를 이른 말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의 첫 2관왕인 그는 사격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그가 우상으로 꼽았던 진종오 앞에서도 떨지 않는 대범함을 보였다. 이날 고교생 총잡이 김청용의 성공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이들이 있었다. 어머니 오세명(46) 씨와 누나 김다정(23) 씨였다. 평소 집안에서 무뚝뚝하다던 김청용은 2관왕을 확정지은 뒤 어머니와 누나를 찾아가 살뜰하게 챙겼다. 누나 김다정 씨는 "동생이 그렇게 살갑던 아이가 아니라서 더 눈물이 났다"고 떠올렸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청용이를 안고 키웠다"던 누나 김다정 씨에게 '새로운 사격 영웅'의 성장 이야기를 들었다.
◇'사격 영웅', 펜싱 선수될 뻔한 사연 김청용의 아버지 김주훈(48) 씨는 아들에게 늘 밝은 얼굴을 가지란 뜻에서 맑을 청(淸)에 얼굴 용(容)을 써서 직접 이름을 지어줬다. 김다정 씨는 "축구선수 이청용(26·볼턴)과 한자가 다르다. 청용이는 강한 이름 같지만 사실 부드러운 뜻이다"고 설명했다. 이름처럼 김청용은 부드럽다. 김다정 씨는 "친구들이 동생에게 '츤데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실제 성격도 이름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츤데레'는 일본어로 '처음에는 퉁명스럽지만 알고 보면 부끄러움을 잘 타고 자상하다'는 뜻이다.
누나의 말에 김청용의 성격은 4년 전 180도 달라졌다. 2010년 겨울, 아들은 아버지에게 운동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 처음에 아버지는 험한 운동을 하는 것에 반대했다. 김다정 씨는 "아버지는 태권도로 충청도대표까지 하셨고, 올림픽 출전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그만두셨다. 힘든 체중조절을 해야했기 때문이다"며 "막내 아들이 당신처럼 고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운동하는 것을 반대하신 것은 아니다"고 했다.
마침 김청용이 다니던 청주 서현중에 펜싱부가 있었다. 아버지는 체중조절이 필요없는 펜싱부에 아들을 맡겼다. 하루를 했는데 제법 재능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시 서현중의 이재훈 교사에게 "더 편안 운동을 시키고 싶다. 사격부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 교사는 "바로 옆의 복대중에 사격부가 있다"며 김청용을 데리고 갔다. 차분한 김청용은 사격에도 재능이 있었다. 김다정 씨는 "이 선생님은 펜싱을 못 시켜 아쉬워했다. 그러나 청용이가 사격에 더 어울린다며 흔쾌히 복대중으로 전학을 허락했다"고 떠올렸다.
◇어머니 웃게 하려고 金 딴 아이 김청용은 아버지와 함께 복대중의 교복을 맞춰 입고 사격선수로 성공을 꿈꿨다. 아픔이 있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한 번 시작했으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속내는 좀 달랐다. 김다정 씨는 "아버지가 사격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혹시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군인이나 경찰이 돼 선임들의 예쁨을 받으란 뜻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종목 선택에 있어서도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던 것이다.
교복을 맞춰 입고 1주일 뒤. 청천병력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아버지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등진 것이다. 남겨 진 사람들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이때 김청용은 누나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한마디를 했다. "엄마, 누나는 내가 책임질 테니까 걱정 마. 그리고 누나, 엄마는 내가 돈 벌어서 호강시킬게!" 중학교 2학년 김청용은 이렇게 소년가장이 됐다. 김다정 씨는 "동생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성격이 달라졌다. 책임감을 더 느끼고 의젓해졌다"고 했다.
가장을 잃은 가족은 흔들렸다. 어머니 오세명 씨는 1년 동안 바깥 출입도 못했다. 매일 같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슬퍼했다. 아들 김청용은 어머니를 보며 꿋꿋하게 총을 잡았다. 아들이 처음 금메달을 따왔을 때, 어머니 오세명 씨가 웃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마냥 좋았던 아들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 더 집중했다. 성적은 쑥쑥 올랐다. 김다정 씨는 "은메달을 따면 그렇게 가족에게 미안해 한다. 우린 은메달도 괜찮은데…"라며 "어머니를 웃게 하려고 금메달을 따온 의젓한 동생이다"고 기특해 했다.
마지막으로 누나에게 금메달을 딴 동생에게 바라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다정 씨는 "진종오 선수는 항상 금메달을 따고 사격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지만 늘 겸손하시다. 아버지가 항상 했던 말이 있다.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잘 나가도 사람이 안 되면 인간이 아니다'고 하셨다"며 "우리 청용이도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