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는 손흥민(토트넘)이 도착하기 전부터 들썩였다. 손흥민의 입국일인 14일 오전에는 두바이 공항에 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대한축구협회는 이날 오후 국내 취재진에 한해 짧은 인터뷰 시간을 내줬다. 중국 취재진은 만날 때마다 손흥민의 경기 출전 여부를 캐물었다. 한 중국 기자는 한국 대표팀 숙소 로비에서 손흥민을 비롯한 한국 선수들을 인터뷰하겠다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역시나 최대 관심사는 손흥민의 출전 여부였다.
손흥민은 최근 한 달 사이에 3~4일마다 경기를 치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걱정이었다. 손흥민에 대한 걱정은 해설진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부터 함께 훈련해 온 선수가 아니고 한창 리그를 뛰다 팀에 들어와 이틀 만에 출전하는 선수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결정을 당연히 존중하면서도, 손흥민의 몸 상태에 대한 걱정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설진의 걱정이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손흥민은 16일(한국시간) UAE 아부다비 알나얀스타디움에서 열린 중국과 조별예선 3차전 경기에서 87분간을 뛰며 팀의 2-0 승리에 큰 도움을 줬다. 경기 이후 손흥민은 출전에 대해 “코칭스태프가 많이 걱정했으나, (출전은) 내가 결정했다.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했다”며 논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결국 손흥민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그라운드를 빠져나왔고, 1개의 도움과 1개의 페널티킥 유도로 좋은 활약까지 펼쳤다. 측면이 아닌 중앙에 배치되며 무리한 드리블을 최대한 자제했고, 간결한 움직임과 패스로 중국 수비진을 휘젓고 다녔다. 움직임 자체는 평소보다 무거워 보였지만 중국 선수들이 떨어져 나갔다.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다”라고 말하던 손흥민은 영리한 움직임으로 스스로를 관리하며 좋은 활약까지 펼쳤다.
손흥민이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이유는 강한 승부욕과 책임감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본다. 2010년에 만난 18세의 손흥민도 그랬기 때문이다. 당시 고향인 춘천 공지천 운동장에서 아버지 제자들과 미니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상대는 손흥민보다 2~3세 어린 선수들이었다. 휴식기여서 가볍게 몸만 풀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손흥민은 훈련 내내 고성을 지르며 거친 태클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휴식기에 어릴 때부터 함께 공을 차던 동생들과 훈련하며 그렇게까지 승부욕을 보인다는 게 대단하면서도 신기해 보였다. 미니 게임에서 패한 이후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도 ‘이렇게 해도 괜찮나’라는 질문에 이내 씩 웃어 보인 손흥민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리 동네 동생들과 공을 찬다고 해도 제대로 해야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이렇게 실전처럼 하고 또 쉬면 되니까요.”
이번 중국과 경기를 보면서 9년 전 손흥민의 모습이 생각났다. 손흥민 특유의 승부욕과 책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에는 없던 노련함까지 더해져 큰 무리를 하지 않으면서도 중국을 꺾는 데 일조했다. 벤투 감독에게도 손흥민의 활약 그리고 깔끔한 인터뷰가 앞으로 토너먼트를 치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손흥민은 스스로 출전을 원했으며, 코칭스태프는 그런 선수를 믿었다. 그리고 벤투 감독이 최종 결정했다. 어쩌면 다소 위험하게 보일 수 있는 87분간의 출전. 결말은 '해피 엔딩'이었다. 대표팀은 이제 16강까지 5일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손흥민은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여유와 자신감이 느껴졌다.
“경기를 이기면, 정신적 부분에 있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승리했으니까 많이 쉬면서 회복하면 충분히 괜찮을 것이다.”